agapeia

화요일, 12월 30, 2014

감사와 아쉬움이 남는 강의..

한 때 교회에 위협 아닌 위협의 존재로 인식되기도 했던 신천지에 대한 이필찬 교수님의 동영상 강의1)를 다 듣게 되었습니다. 적극적으로 추천하기도 했던 한 사람으로서, 계시록 강의를 통해 좀더 배울 수 있는 기회로 보아 구입해서 듣게 되었고, 견해의 차이가 있지만2), 참으로 유익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좀 아쉬운 점3)과 공감을 통한 감사4)가 있었던 것으로 요한계시록을 배우는 좋은 방법을 소개하고 증거하셨다는 것을 한번더 언급하면서 감사하는 마음과 또한 공부를 위한 추천도 하고 싶습니다.
 
 
 
 
 
 
 
 
 
 
 
 
 
 
 
 
 
 
각주2) 교수님의 강의 37강에서는 무천년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무천년적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각주3) 첫째로는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가 동일하게 어린양의 노래라고 하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모세의 노래와 어린 양의 노래가 결국 어린양의 노래라는 것을 좀더 부언설명을 해주셨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둘째로는, 요한계시록에서 '천년' 또는 '천년왕국'에 대한 견해 차이가 참 아쉬웠는데, 지금까지 그 견해차이라는 것에 대하여서 언급하며 말하기 보다는 무천년주의자로서 강의를 들으며 생각하게 되는 것은 천년을 상징적 실재로 보는 것이 문맥적으로 더 옳지 않은가 하는 생각과 그것이 교회시대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prology is eschatology, eschatology is prology,
일반적으로 루터란에서 제기하는 에덴의 죄를 짓기 전의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개혁주의에서는 그보다 더 하나님 안에서 의로움에 대한 것을 말하고 있다는 점을 마음에 두고 있는데 그것에 대한 견해의 차이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해와 달의 기능적 개념을 통해 시간이라는 개념의 완성과 실제라는 것이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서 온전히 이루어졌음을 기억할 때에 그 차이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시간이해도 달리 나타날 수 있다고 보는데, 주의 재림 이후에 일상적 시간의 개념의 첫재와 둘째라는 시간상의 개념을 변화가 없는 가운데서 언급되고 있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의 재림 이후에 시간의 정체성이 모호해진 가운데서 일상적 시간 이해로서의 천년을 현실적 실재의 개념으로 접근한다는 것이 주의 재림의 온전성에 대한 증거의 훼손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더욱 그러한 시간의 차이라는 개념에서 천국과 새하늘과 새땅이라는 개념이 다른 곳으로 이해되어진다는 것이 여전히 시간의 존재의 판단 하에 있는 실존의 문제로서 천국과 새하늘과 새땅의 존재 규명이라는 것이 앞서 말한 주의 다시 오심의 완성적 개념을 온전히 나타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런 표현은 데살로니가 후서에 나타난 말씀을 논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좋은 패턴과 요한계시록의 일관성을 이룰 수 있는 좋는 시각임을 인정합니다만 중세의 연옥 사상과 비교되어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안티적 개념에서 비로소 말하는 것이 아니며, 이미 천국의 사람들이 판단받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첫째 부활이라는 개념을 시간상에서의 규정적 의미로 재림과 재림 이후에 있다고 하는 여러 부활에 대한 것에서 비교적 앞섬을 말하기 보다는 부활의 첫 열매 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 자체가 첫째 부활에 참여했음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더 옳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번째 부활을 의식할 수 있는 표현은 있지만 둘째 부활이라는 규정적 명칭의 실재는 언급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되며 둘째 사망이라는 개념도 시간적 여러 사망을 중에 최종적 개념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온전한 사망, 또는 완전한 영원한 사망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저도,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바과 같이 천년기에 대한 견해 차이를 모두 나열해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동영상 강의를 수강하는 가운데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기록했을 뿐입니다.
 
 
각주4)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He will make things new ..
 
이것을 지적하신 부분입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종말론에 있어서 '갱신'이라는 표현적 입장이라는 것이 공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파괴나 새로운 창조라는 개념을 지적하신 것과 같이 He will make new things라고 알고 있는 자들이 많은데, 그런 견해가 아니라 앞서 말씀하신 바 전자의 입장을 말씀하심이 저도 동감하는 중심입니다.
 
그리고 비록 교수님은 '역사적 전천년설'을 지지하시는 교수님이시지만, 지금 교회 시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은 공감되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본 주제와 같이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한 패턴으로서 이해되어지는 신천지의 육하원칙적 단순한 이분적 개념의 요한계시록을 해석함에 있어서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을 지적하심에 있어서 한 분별적 시각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을 감사드리며, 또한 우리 믿음의 시작에 있어서, 세대주의적인 출발이 있었음에 대한 연구결과를 표현해주신 것에 대해서도 그 노고를 주 안에서 감사드립니다.
 
비록 견해의 차이가 있었지만, 평소 안티 철학적 개념적 사실을 다루는 철학적 개념들과 신학적 개념들에 비해서 생각할 때에, 아주 좋은 배움의 시간이었음을 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