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peia

화요일, 9월 20, 2005

이는'시간의 시작 세월의 시작을 말하기 전'이라는 개념 해석

'부활이 없다 하더냐' 설교본문중 해설..

설교 본문에서 시간의 시작 세월의 시작을 말하기 전이라는 표현은 시간적 표현이기 때문에 역사적 판단을 받지 못한다는 언급을 하였습니다.

즉 시간의 시작을 말하는 것은 시간의 보편성 밖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시간의 인식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시간으로 그것을 묘사해야 하는 부정적인 입장과 모순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하나님의 창조물인 가운데서 그 시간, 세월의 판단을 받지 않음과 그 존재의 비교적 표현이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함에 있어서는 그 정당함이 자존의 하나님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는 자존의 하나님으로 자신의 존재적 정당함을 절대적으로 자신이 취하시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서 시간의 실존을 주관하시며 자리매김하도록 하기기 때문입니다.

세월 시간의 보편성은 상대적입니다. 상대적 정당함으로 절대를 판단할 수 없는 가운데서 합리성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즉 상대적 보편의 입장에서 본다면 절대의 상대적 표현을 비로소 판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앞서 제가 모순적 표현을 한 것으로 인식되어질 수 있는 가능성으로써 '시간의 시작 세월의 시작을 말하기 전'에 대한 해석은 상대적 정당함에서 비로소 본다면 그 합리성이 부인되는 것같이 느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창조물로서의 시간의 존재와 그 역활과 그 보편성이라고 하는 것을 볼 때에는 그러한 판단은 가능하면서도 정당함이 상대적인 것뿐이며, 절대의 재가를 받지 못한 표현으로써, 그것은 하나님의 실존을 그리고 그로부터의 정당함을 입은 계시와 진리를 비로소 판단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과 시간은 상대적 판단으로 본다면 시간으로 하나님을 인식하고자 할 수 있지만 비로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재가되어진 가운데서의 역사적 하나님을 상대적이면서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좀더 부언하면

존재와 인식의 방향이라고 하는 것과 그 정당함의 시비가 합리성의 가능적 정당함이 절대의 재가를 받는 여부에 따라서 참됨과 거짓의 정체성이 성립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합리성의 실존의 정당함에 따른 합리성의 논란의 시비가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됨과 거짓의 실존은 그것이 절대적이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상대적이면서도 절대적이냐 아니면 그렇게 임의적으로 받아야할 것이냐

이 문제에 있어서 사람들은 후자의 경우로 생각하고 있고 또 기독교도 그 가르침의 핵심인 부활에 대한 것도 그렇게 잘못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가 옳은 것은 상대적이면서도 절대의 재가가 있게 되어지고 신의 절대의 재가와 함께 신의 절대 보편성이 부여되어지는 것이면 상대적이면서도 절대적임의 사실을 말함에 정당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설교 본문에 있어서도 설교의 증거적 차원에서 하나님 앞에서 정당함을 입음의 정당한 합리성을 말할 수 있다는 간단한 표현만 했는데, 그것은 합리성의 실존이라고 하는 것의 정당함은 자존의 절대자로부터의 정당함을 입지 않으면 그것은 진정한 사실의 실존을 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것에서는 절대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며 상대적인 것의 반대는 절대라는 잘못된 사상의 채색에 속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인식은 그것의 정직함을 말하려면 그 말자체도 상대적이어야 하는데 즉 상대적이면서도 절대적인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서 그로부터의 정당함을 찾는 가운데서 절대의 보편의 재가가 공식화되어졌고 이것은 자존의 절대자의 예정적 예언의 역사적 사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상대적으로 비합리적인 것 같아 보여도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이라고 함의 절대적 재가가 부여되어진 가운데서 진정한 사실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