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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12월 30, 2014

감사와 아쉬움이 남는 강의..

한 때 교회에 위협 아닌 위협의 존재로 인식되기도 했던 신천지에 대한 이필찬 교수님의 동영상 강의1)를 다 듣게 되었습니다. 적극적으로 추천하기도 했던 한 사람으로서, 계시록 강의를 통해 좀더 배울 수 있는 기회로 보아 구입해서 듣게 되었고, 견해의 차이가 있지만2), 참으로 유익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좀 아쉬운 점3)과 공감을 통한 감사4)가 있었던 것으로 요한계시록을 배우는 좋은 방법을 소개하고 증거하셨다는 것을 한번더 언급하면서 감사하는 마음과 또한 공부를 위한 추천도 하고 싶습니다.
 
 
 
 
 
 
 
 
 
 
 
 
 
 
 
 
 
 
각주2) 교수님의 강의 37강에서는 무천년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무천년적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각주3) 첫째로는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가 동일하게 어린양의 노래라고 하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모세의 노래와 어린 양의 노래가 결국 어린양의 노래라는 것을 좀더 부언설명을 해주셨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둘째로는, 요한계시록에서 '천년' 또는 '천년왕국'에 대한 견해 차이가 참 아쉬웠는데, 지금까지 그 견해차이라는 것에 대하여서 언급하며 말하기 보다는 무천년주의자로서 강의를 들으며 생각하게 되는 것은 천년을 상징적 실재로 보는 것이 문맥적으로 더 옳지 않은가 하는 생각과 그것이 교회시대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prology is eschatology, eschatology is prology,
일반적으로 루터란에서 제기하는 에덴의 죄를 짓기 전의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개혁주의에서는 그보다 더 하나님 안에서 의로움에 대한 것을 말하고 있다는 점을 마음에 두고 있는데 그것에 대한 견해의 차이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해와 달의 기능적 개념을 통해 시간이라는 개념의 완성과 실제라는 것이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서 온전히 이루어졌음을 기억할 때에 그 차이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시간이해도 달리 나타날 수 있다고 보는데, 주의 재림 이후에 일상적 시간의 개념의 첫재와 둘째라는 시간상의 개념을 변화가 없는 가운데서 언급되고 있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의 재림 이후에 시간의 정체성이 모호해진 가운데서 일상적 시간 이해로서의 천년을 현실적 실재의 개념으로 접근한다는 것이 주의 재림의 온전성에 대한 증거의 훼손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더욱 그러한 시간의 차이라는 개념에서 천국과 새하늘과 새땅이라는 개념이 다른 곳으로 이해되어진다는 것이 여전히 시간의 존재의 판단 하에 있는 실존의 문제로서 천국과 새하늘과 새땅의 존재 규명이라는 것이 앞서 말한 주의 다시 오심의 완성적 개념을 온전히 나타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런 표현은 데살로니가 후서에 나타난 말씀을 논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좋은 패턴과 요한계시록의 일관성을 이룰 수 있는 좋는 시각임을 인정합니다만 중세의 연옥 사상과 비교되어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안티적 개념에서 비로소 말하는 것이 아니며, 이미 천국의 사람들이 판단받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첫째 부활이라는 개념을 시간상에서의 규정적 의미로 재림과 재림 이후에 있다고 하는 여러 부활에 대한 것에서 비교적 앞섬을 말하기 보다는 부활의 첫 열매 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 자체가 첫째 부활에 참여했음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더 옳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번째 부활을 의식할 수 있는 표현은 있지만 둘째 부활이라는 규정적 명칭의 실재는 언급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되며 둘째 사망이라는 개념도 시간적 여러 사망을 중에 최종적 개념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온전한 사망, 또는 완전한 영원한 사망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저도,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바과 같이 천년기에 대한 견해 차이를 모두 나열해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동영상 강의를 수강하는 가운데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기록했을 뿐입니다.
 
 
각주4)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He will make things new ..
 
이것을 지적하신 부분입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종말론에 있어서 '갱신'이라는 표현적 입장이라는 것이 공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파괴나 새로운 창조라는 개념을 지적하신 것과 같이 He will make new things라고 알고 있는 자들이 많은데, 그런 견해가 아니라 앞서 말씀하신 바 전자의 입장을 말씀하심이 저도 동감하는 중심입니다.
 
그리고 비록 교수님은 '역사적 전천년설'을 지지하시는 교수님이시지만, 지금 교회 시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은 공감되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본 주제와 같이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한 패턴으로서 이해되어지는 신천지의 육하원칙적 단순한 이분적 개념의 요한계시록을 해석함에 있어서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을 지적하심에 있어서 한 분별적 시각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을 감사드리며, 또한 우리 믿음의 시작에 있어서, 세대주의적인 출발이 있었음에 대한 연구결과를 표현해주신 것에 대해서도 그 노고를 주 안에서 감사드립니다.
 
비록 견해의 차이가 있었지만, 평소 안티 철학적 개념적 사실을 다루는 철학적 개념들과 신학적 개념들에 비해서 생각할 때에, 아주 좋은 배움의 시간이었음을 말할 수 있습니다.
 

일요일, 11월 04, 2007

신명기26장 해석보충 -십일조에 대한 몇가지 언급

1) 십일조는 예수님께 드려진다는 점에서 이미 맏물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것이며 또한 모든 헌물들도 그와 같은 것으로 사실 야곱의 서원이라고 함을 이루는 것의 전형적인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야곱이 서원 중에 반드시 십분의 일과 헌물을 반드시 드리겠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을 멀리서 바라봄에 대한 의지적 확신으로 나타남을 마음에 둘 수 있다. 즉 반드시 드리겠다는 것은 아무 의미없는 어떤 하나님께 정적인 의지적 차원의 확실성을 말하고자하는 것에만 국한시킬 수는 없는 것이라는 점이다.

2) 신명기 26장에서의 설교 본문 두 번째 본문에서 주목할 수 있는 것과 같이 그들을 구원하셨음에 대한 것과 그 맏물을 드림이라고 하는 것을 기억하고 이것은 십일조가 교회의 구원사역을 위한 것으로 사용되어져야 함을 문맥적으로 읽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선교후원금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기본적인 활동으로서의 모습이기 때문에 교회 운영과 복음사역 전반을 위한 것으로 봄이 합당하다고 하겠다.

3) 본문에 나타나는 고아와 과부라고 하는 것은 교회와 복음으로 낳게 되는 성도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는 것이 옳다고 하겠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교회의 신부로서의 모습을 주목할 때에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과 같이 현상적으로 보여질 수 있다는 점에서, 비록 참된 신부요 그리스도와 동행하고 있지만, 과부로 표현되어질 수도 있고 주님께서 함께하시며 동행하시지만 그 엠마오 두 제자와 같이 주님이 동행중에 계심이라고 하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상대적 입장에서 주목할 때에 복음으로 낳은 아이로서의 성도의 모습이 고아와 같이 보여질 것이요, 객이라고 하는 것은 주의 택함을 말할 수 없다고 하여도 청함을 받은 자들의 모습을 말하는 것으로 교회에 나오게 되어지는 현상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보편적으로 칭하신 것으로 주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대되어질 수 있는 사회복음적 개념에서나 민중 해방신학적 입장에서는 가난하다는 개념과 고아와 과부를 일반사회적 언어로서만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 중요한 것은 성경의 구약적 성례전적인 실제의식이라고 하는 것을 현상적 개념만으로 한정시켜서 비로소 적용 인식하는 가난한 자들이라는 표현이 사실성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하여서 사회복음으로서의 민중 해방신학자들은 답변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답변의 여부와 상관없이 그것이 사실로서 규정하는 실재는 그들에게는 없다는 것이 더 핵심적인 그들의 고민이 될 것이다.


4) 몇가지 오해되어질 수 있는 것들을 지적하면 :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면 예배당 출석의 당위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며, 소위 빈손으로 주 앞에 보이지 말라고 하심도 물질적 개념으로 비로소 행하기보다 자기 자신과 자기의 중심을 드림이라고 하는 것을 나타내고자 할 때에 마땅히 드릴 것을 구별하여 찾을 수 있음을 마음에 두지 않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십일조에 기복적 측면이 있으나 그것은 비로소의 개념과 정체성이 아니고, 헌신의 한 표현이다,그리고 비유컨대 마치 여타 상황에 따라서 식사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여도 식사를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음과 같이, 십일조와 헌물은 우리 자신을 드림의 한 표현으로서 기본적인 신앙의 표현이며 증거인 것이다. 맏물로서의 자신을 드림이라는 것이 기본적인 온전한 것이므로 그 표현의 행위여부에 매이지 않는 자유가 있다고 하여도 분별없거나 또는 증인으로서의 직무적 태만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성도는 없다는 것이다.

신명기 26장과 달리 말라기서의 십일조 개념은 하나님을 시험함이라든가 물질적 축복이 있다고 하는 것은 시대적 정황에 따라 십일조가 기복적 개념으로 정체성이 바뀐 것이 아니라 시대적 정황 속에서의 하나님의 말씀의 신실성을 나타내고 그 백성의 연약함을 받으셔서 지켜 보호해주심이라고 하는 실제적 중심을 가지도록 하시고 그러한 한 표현으로서의 물질적개념에서도 축복의 사실을 찾을 수 있게 하셔서 우리의 감당할 수 있게 하시거나, 감당치 못하는 가운데서의 피할 길을 예배하심으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할 것이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도적질하는 것이란 말씀에 대하여서는,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상황이나 여하한 가운데서 드리지 못하였을 때에도 교회 예배당 출석과 경배는 당연한 것이다. 다만 이미 그러한 하나님의 구원을 마음에 두지 않고 기만적으로 교회에 나가서 기득권적인 행위를 하면서 십일조를 의도적으로 내지 않는 것은 자기 자신과 성도들의 잘못된 중심과 행위를 본받게 한다는 점에서 '양들'로서의 성도들을 기만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하심의 중심을 잃어 흩어지게 만드는 도적이라는 점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십일조와 헌물은 헌신과 함께 주의 구원에 대한 합당한 증거임을 교회에서는 가르쳐야 하고, 그 드림에 있어서는 강요가 아니라 드리는 자가 하나님 앞에서 신실성을 갖출 수 있고 그 중심의 정당함을 주관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받는 자리에 이름이 합당한 모습이라고 하겠다.


참고 : 신명기 26장 설교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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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9월 12, 2007

아프간 피랍자 합동 기자회견 문답

(안양=연합뉴스) 김경태 기자 = 아프가니스탄 피랍자 21명은 12일 샘안양병원에서 퇴원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룹별로 다르기는 하지만) 일부는 24차례 이동하며 감금 상태에서 개종을 강요당하고 폭행을 당하면서 노예같은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이들과의 일문일답 중 새로운 내용을 중심으로 요약했다.

-- 외신에서 나온 '민소매 차림' 보도 등이 사실인가.

▲ (임현주) 민소매 차림은 비상적인 보도다. 현지인 복장을 구매해 입고 온몸을 가리는 큰 스카프를 착용했다. (호화버스 보도에 대해) 매일 칸다하르로 운행되는 시외버스를 전세로 빌렸다. 검문하던 경찰들로부터 좋은 일 한다는 말을 들었고 가즈니 초소를 지나갈 때에는 환영받으며 지나갔다.


-- 국내 비난여론이 여전한데.

▲ (김경자) 귀국해 언론을 접했을 때 저희 팀과 상관없는 많은 일들이 잘못 알려져 있어 안타까웠다.

(유경식) 민소매 차림, 쇼핑, 호화버스. 서면 여행자제요청 사전 인지 등은 전혀 사실 아니다. 교육.의료봉사를 했는데 마치 길거리에서 선교하고 개종을 요구한 것 처럼 알려졌다.


-- 이선영씨 미니홈피에 나온 '이슬람사원 예배'는 사실인가.

▲ (이선영) 2005년 칸다하르 모스크를 방문했을 때 관리인 허락 하에 노래를 한 곡을 불렀다. 우연히 일어난 에피소드였고 그들의 종교를 침해하며 한 일 아니다.


-- 정부의 여행자제 공문에 대해 사전에 알고 있었나.

▲ (이선영) 6월초부터 비자발급 일을 맡아 진행했는데 어떤 기관 단체나 기관으로부터 안전에 대한 공식 공문이나 서신, 공지를 받지 못했다. 다른 기관을 통해 갈 예정이었는데 필요없을 정도로 순조롭게 진행됐다. 작년에 어떤 단체가 행한 일을 우리가 한 일 처럼 알려진 것 같다.

그룹별 억류생활을 말해달라.

--
(유경식) 그룹별로 다르다. 비교적 잘 대해준데도 있고 그렇지 않은데도 있다. (유정화) 죽음의 공포였다. 비디오를 여러 번 촬영했다. 구덩이가 파진 곳에서 기관총을 겨누는 상황이었다. 억류 마지막에는 이슬람을 믿으면 살려주겠다고 위협했다. 자극할까 소리 내 울지못하고 임현주씨 품에 안겨 반나절을 보내야 했다. 지금도 카메라를 바로 볼 수 없다.

(제창희) 남부 산악지대(해발 3천m)에서 20일을 보냈다. 산을 깎아 만든 토굴에서 생활했다. (40일간 입었다는 분홍색 반소매 티와 구멍뚫린 연회색 바지를 공개) 맨 손으로 오토바이 길을 내게 했고 물 기는 것, 불 때는 것 이외에 토굴에 들어온 독사를 나무로 잡아야 했다. 구타를 많이 당했다. 대검을 총에 착검한 상태에서 종교를 강요당했다. 목에 총기로 겨누고 나뭇가지와 발로 때렸다. 송병우씨는 구덩이에 빠져 가슴 뼈를 다쳤다. 씻지 못하고 필수품도 없었다. 화장지가 없어 책 뜯어 휴지로 사용했다. 여성들은 몸을 가리고 있어 머리에 진물이 나고 해충에 많이 물렸다.

(차혜진) 12번 이동했다. 처음엔 헛간 창고서 탈레반과 24시간 함께 지냈다. 나중에 민가에서 지내며 오토바이로 2명씩 이동했다. 중간에 도보로 이동할 때 남자들은 눈을 가렸다.

(한지영) 좁은 공간에서 탈레반과 함께 있었다. (울먹이며) 빛이 들어오지 않는 방 안에서 10여 일간 하루 1시간씩 자며 거의 먹지못했다. 생리적 고통도 있지만 감금생활에 따른 심리적 고통이 크다.

(고세훈) 우리 팀은 매일 밤 이동했다. 민가서 24번 이동했다. 전쟁지역이라 그런지 화장실 갈 때 폭탄이 터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한 방에 탈레반 2명의 감시를 받으며 함께 먹고 자는 상황이었다.


-- 개종 강요와 폭력이 있었다는데.

▲ (제창희) 개종 강요하면서 그 중 몇 명에게 폭력을 가했다. 돌을 던지고 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위협했다. 나뭇가지를 꺾어 때리며 개종을 강요했다. 여자들도 토굴로 들어와 총으로 위협하며 개종 강요했다. 5번 정도 기도했는데 개종문을 따라 하라고 시켜면서 반복적으로 때렸다.


-- 배형규 목사 피살 상황은.

▲ (한지영) 두 그룹을 나눠 민가에 도착하자 마자 배 목사의 성과 이름을 확인하고 목사님을 데리고 나갔다. 우리를 쳐다보지 않으며 걸음을 옮기면서 '믿음으로 승리하세요'라고 의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게 마지막이었다.


-- 서명화씨 '바지 피랍일지'에 집과 통화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 (서명화) 한 집에 탈레반 3명과 같이 있을 때 우호적으로 대해줬다. 아프간 이름도 지어주었다. 간절히 통화를 원한다고 해 남편과 짧게 통화했다. '안전하게 잘 있다.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끊었다.


-- 동영상 촬영 및 언론과 전화통화한 과정은.

▲ (임현주) 강제로 서너번했다. 현지어 알기에 네 다섯번 통화했는데 무조건 BBC라고 얘기했다. 대부분 아프고 매일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요구를 듣지 않으면 살해하겠다고 했다. 대통령, 교황, 유엔 사무총장 이름 대며 간절하게 연기하라고 했다.

(유정화) 영어로 했다.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아 천장에 매달아 놓아 큰소리로 외쳤다. 위협적인 상황에서 시킨대로 했다. 두번째 인터뷰에선 아픈 것을 말하지 말라고 했다.


- 잘 대해준 탈레반도 있나.

(고세훈) 매일 이동하며 샌들 끈이 끊어져 운동화를 사왔는데 한국제품이더라. 이동이 수월했다.

(서경석) 누나와 떨어져 걱정인데 탈레반에게 말해 쪽지를 일주일에 한 번 주고받았다.


-- 앞으로 아프간 등 위험지역에서 선교할 의향이 있는지.

▲ (유경식) 해외선교 전반에 대해서는 교계에서 논의 중이어서 정리되면 그 것에 따를 생각이다.


-- 몸값 지불 및 구상권 청구 논란에 대한 생각은.

▲ (유경식) 구상권은 이미 정부가 입장을 밝혔다. 교회에서도 입장을 밝힌 것 알고 있다. 교회와 정부 하는대로 따라 갈 것이다. 국민과 정부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큰 심려 끼쳐 거듭 죄송하다. 죽었을 것인데 살아난 만큼 남은 삶을 국민 사랑과 기대에 부응하겠다. 사랑하고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겠다.


-- 이주연씨 어머니 간증 동영상 논란에 대해.

▲ (이주연) 동영상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시기가 부적절하거나 내용 등에서 불편을 느낀 분들이 많다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출처 : 예수그리스도 향기카페, ☎ Cafe 자유게시판 ☎ 글쓴이: 요엘 번호 : 20894 조회수 : 28 2007.09.12 15:29

글쓴이 견해 : 피랍자들의 언급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정부의 위험에 대한 고지로서의 공문을 받은 것이 없다는 언급에서 볼 때 여러 언론에서의 '국가의 권고를 무시하고'라는 말을 중심으로 비판 언급 한 것은 잘못된 오보임을 마음에 두게 된다.

이선영 : 제가 6월부터 비자 발급과 관련된 일을 진행했다. 비자 발급 과정에서 어떤 단체나 기관에서도 안전에 대한 공식적인 공문을 받지 못했다.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었다. 돌아와서 인터넷에서 떠도는 글에 대해 들었는데, 지난해 다른 단체에서 행한 일이 우리가 한 일처럼 알려졌다. 어떤 단체나 기관으로부터 그런 공지나 서신을 받은 적 없다.

이선영 : 거듭 말하지만 돌아와서 그런 내용을 듣고 당황했다. 비자 관련해서 초청장을 발급 받을 때 단체나 기관으로부터 공문을 받거나 이야기를 들은 적 없다. 순조롭게 비자를 발급받았다. (비자 발급을 거부당한 적 있다고 들었다.) 그건 비자 문제가 아니라 초청장에 관한 일인데, 위험해서가 아니라 단체 간 이해관계 때문이다.

출처 : 예수그리스도 향기카페, ☎ Cafe 자유게시판 ☎ 글쓴이: yes24 번호 : 20898조회수 : 402007.09.13 08:09 '피랍자 21명 퇴원 기자회견서 억류 과정 상세히 설명'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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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9월 11, 2007

사실 이해에 있어서 주의할 점

하나님으로부터, 참된 신으로부터 정당함을 따른 사실판단을 한다고 할 때에,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개념없는 이교도들의 개념없는 맹목적인 신의 이름으로 인한 임의적 배타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1)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얻는 일상적인 것도 있기에 그것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2) 여러가지 상대적 입장이 있다고 하여도 그리고 그것을 고려해볼 때에 하나님의 말씀하심에서 해석되어질 수 있는 것으로서의 정당함을 부여할 수 있는 현실적인 것이냐에 대한 판단과 그것을 사실로 받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 그것이 허용되지 않을 때, 현실적인 것과 반대되어지는 것을 사실화하시기를 기뻐할 때는 그것을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3) 인격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경에 맞지 않거나 인격적이지 못한 것을 명하시지 않는다는 것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4) 성경이 기록되어지는 계시의 시대와 현실적인 시대의 영감은 또한 차이가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이 기록되어지는 특별영감의 시대와 성경이 기록완료된 현대에서의 하나님의 영적 감동은 차이가 있습니다.

특별영감으로서의 그 기록적 말씀의 영감으로부터의 영적인 영감(inspiration)적 정당함을 얻어 사실화하며 납득함의 당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기록의 특별영감과 현대의 영적 영감이라고 하는 것을 그 범주가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고 동일범주에서 다루는 것과 같은 오류는 성경해석의 옳음을 말할 수 없다는 것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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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9월 04, 2007

비판의 추이(推移)

처음에는 교회의 목사직에 대한 부당함과 그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노력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교회의 질서를 이해하지 못하고 상식적인 개념으로 잘못되었던 것을 지적하였습니다. 단적으로 설교와 선동의 개념을 혼동한 또는 혼동의 의도적 개념으로 접근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세금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서 그 구상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와 종교의 분립이라는 헌법적 정치적 원론을 마음에 두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정법 이해에 왜곡으로 범법자로서의 피랍된 형제자매들을 이해하려는 잘못된 노력들도 있었습니다. 이슬람적 실정법의 정당함은 이미 부정되었다는 것을 언급할 수 있고 또한 현실적인 법으로도 여행 금지가 아닌 제한구역이라는 점에서는 적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외국에서도 그것을 인정하는 상식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국가의 행보에 대하여서도 납세의 의무를 가진자들로서 참정적 권세로 여론을 임의적으로 조작하려는 노력들이 있습니다. 국가의 행보라고 함에 있어서는 여러가지로 부적절하다고들 하지만 그러나 국민을 보호함에 있어서는 다른 나라의 예에서도 인정되어질 수 있음을 마음에 둘 때에 독설적 입장은 의미를 상실한다고 하겠습니다.

여러 여론의 환기를 위한 투표라고 하는 것도 전문적인 언어로서의 선교와 그에 따른 사고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고 상식적인 측면만을 고려하여서 실시된다면 그것은 인식의 통계의 표본을 잘못 설정한 것으로 그 결과의 여부라고 하는 것은 어떤 보편적 규정적 역활을 할 수 있는 자료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고 : 아프간 피랍자 합동 기자회견 문답

글쓴이 견해 : 피랍자들의 언급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정부의 위험에 대한 고지로서의 공문을 받은 것이 없다는 언급에서 볼 때 여러 언론에서의 '국가의 권고를 무시하고'라는 말을 주되게 한 것은 잘못된 오보임을 마음에 두게 된다.


http://geocities.com/voss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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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9월 03, 2007

종교세에 대햐여 (납세와 참정권)

납세와 참정권..


국가의 어려운 제정상태를 의식해서 세금의 적절한 확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옳다고 봅니다. 그러나 세금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돈을 벌기 위한 기업으로서의 노력적 당위성이 있다고하면 그것이 당위성을 가지고 있지만, 돈을 벌기위한 것과 이윤창출이라는 것을 따르지 않는다면 세금징수로서의 의미와 규정은 성립되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각주1)

아이들이 부모에게 용돈 받는 것과 같은 것도 앞으로 세금으로 거두는 것이 좋겠다.. 나라가 어려우니까.. 그러한 극단적인 측면을 야기하는 것과 비교하는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 소득 탈루혐의가 있는 전문업종의 사람들의 세금을 받게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돈을 벌기위한 것이 아닌 것에 대하여서 세금을 징수하는 것은 기만된 여론조작이라고 함을 읽을 수 있고 국민 여론적 통계는 이러한 기본적인 세금의 의미를 마음에 두지 않는 것이라고 함에 따라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서의 당위성을 가지지 않는다고 함이 옳은 것입니다.


통계의 중요성과 고려는 마음에 두어야 하지만 그러한 그러한 조작과 기만성도 같이 있음에 대한 것도 적지 않게 마음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납세를 할 경우 고려해야 할 것은..

납세를 하게 되면 참정권과 같은 것을 의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성직자를 마음에 두고 언급되는 것이 기본인데.. 그들이 기초생계비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생활비를 국가가 지원해야 합니다.(각주2)

기독교를 비판했던 프랑스에서도 똘레랑스라는 입장에서 정교의 분리를 말하고 있거늘, 참정권도 따라온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납세에 대한 의무만 강요한다는 것은 정교의 혼란을 가져올 것에 대한 생각없는 입장이 될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에서 이미 그러한 입장을 취하는 자유주의자들이 있는데 그래서 그러한 정치에 대한 호응과 그러한 참정권적 입장에 찬성하고 있고 그것에서 주고 받는 세상의 청지기의 길을 걷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입장이 기독교의 참된 실재적 입장은 아니라는 것은 성경에서 불의한 청지기적 비유의 말씀에서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해외의 경우를 말하고 있는데 해외의 경우에서도 신학적 사조라고 하는 것이 헝켜서 자유주의적 개념에서 정교의 분리적 입장을 말하지 않는 자들도 있고 그들의 주류적 개념에서 있게되어지는 상황들을 고려하지 않고 예를 발취하는 것도 분별없는 인용적 정신이고 그러한 정신에서 국민의 여론을 기만하는 행위를 세운다면 옳은 것은 아닙니다.


정교의 분리.. 그것을 원치 않는 것이 참정권을 무시한 납세의 당위성을 말하는 어리석음인 것입니다. 국가의 혼란을 야기하지 않으려면 똘레랑스적인 그러면서도 정교의 분리적 입장을 말할 수 있는 종교인 성직자의 세금운운은 하지 않는 것이 세상적으로도 지혜로울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서 정교의 상관성이 있으나 정치가 신앙을 비로소 말할 수 없는 것이고 그러한 가운데서도 신앙적 측면에서 정치를 말할 수 있는 합리적 사유의 방향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말한 것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이런 국가와 신앙의 범주이해에 대한 결핍으로 오도되어진 여론을 등에 엎고 정교혼합에 따른 국가의 위기를 초래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적인 것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주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서 우리의 삶의 존재를 맡긴다는 중심의 신앙고백으로 돈과 상관없이 섬기는 것이 기독교의 종들의 모습의 실상입니다.


세대가 어렵다보니 그러한 섬김을 섬김으로나타나는 예물을 돈벌이로 생각해서 탐내고 있는 모습을 볼 때에 과연 돈을 사랑하는 악함이 국가의 어려움을 초래하는 악함으로 나타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국민 여론의 수렴이라는, 통계라는 개념의 고려성을 실제성으로 생각하기 앞서 납세라고 함의 기준점과 의미와 그에 따른 청구를 바르게 할 수 있도록 하심이 좋겠고, 주의 종들은 그 섬기는 예물을 바르게 받지 못할 때에는 섬기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책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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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1) 직업이라고 하는 것은 재물을 얻기 위한 것으로서의 합목적적인 활동을 전제로하고 있고 또한 그러한 것을 이루어나가는 것이라고 할 때에, 직업이라고 해석 가능한 것이, 직업 비로소 그 직업 자체로 규정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닌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직업뿐만 아니라 비영리단체라는 측면에서는 그와 같은 측면의 경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교회와 같은 종교적 입장에서는 수입을 위한 합목적적 경우가 아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익창출이라는 개념으로 교회와 성직자에 대한 세금을 의식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각주2)예를 들어, 한해에도 신학교에서 졸업하는 신학생들이 몇백명씩 된다고 할 때에 그들이 그러한 참정권에 따른 권익을 주장하고 교회 개척을 한다면 그들을 국가가 생활비를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기초생활비로 그들을 도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정치적 입장에서 도움을 받는다면 성직자는 설교시간에 '정치적인 이야기와 비판을 할 수도 있고 선동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단체들이 모두 정치적인 참정권에 따라서 '이익단체'로서 '압력단체'로서 맨날 국가에 데모한다고 해도 전혀 불법이 아닐 것입니다.

앞서 언급되어진 상황과 또한 정치적 참정권을 통한 권리를 위한 투쟁은 합법적인 것이 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합법적으로 국세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창구도 보장되어지고 해석적 적용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 합법적 당위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수요일, 11월 22, 2006

작은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실 때에 작은 홈페이지 방명록을 사용하실수 있습니다. 독자의 편의를 따라서 여러사이트의 작은 홈페이지 방명록을 준비했습니다. 이들 홈페이지는 로그인없이 글을 쓰실 수 있도록 했습니다.



참고해주세요..
(각 작은 홈페이지 방명록에 대하여)

1) 드림위즈 프리첼 그리고 세이클럽 홈페이지들은 글자수 제한이 있어서 간단하게 한말씀하실 수 있는 경우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 프리첼의 경우는 '쉿 너만 봐'기능으로 비공개적으로 말씀하실 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3) 싸이월드 방명록(visitor)인 경우는 글자수 제한은 없는 것같습니다. 논쟁도 가능하지만 저만 답글을 쓸 수 있고 논쟁의 진행상 새롭게 저의 답글에 다시 답글을 쓰는 기능은 지원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말로써의 글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공개적으로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