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www.blogger.com/styles/atom.css" type="text/css"?><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ns:openSearch='http://a9.com/-/spec/opensearchrss/1.0/' xmlns:georss='http://www.georss.org/georss' xmlns:gd='http://schemas.google.com/g/2005' xmlns:thr='http://purl.org/syndication/thread/1.0'><id>tag:blogger.com,1999:blog-7024085</id><updated>2011-07-08T21:45:17.624+09:00</updated><title type='text'>agapeia</title><subtitle type='html'>성도들의 만남과 교제를 위하여..</subtitle><link rel='http://schemas.google.com/g/2005#feed'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agapeia.blogspot.com/feeds/posts/default'/><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max-results=100'/><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agapeia.blogspot.com/'/><link rel='hub' href='http://pubsubhubbub.appspot.com/'/><author><name>.</name><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generator version='7.00' uri='http://www.blogger.com'>Blogger</generator><openSearch:totalResults>18</openSearch:totalResults><openSearch:startIndex>1</openSearch:startIndex><openSearch:itemsPerPage>100</openSearch:itemsPerPage><entry><id>tag:blogger.com,1999:blog-7024085.post-3271158343891346752</id><published>2007-11-04T01:00:00.000+09:00</published><updated>2007-11-07T13:50:45.660+09:00</updated><title type='text'>신명기26장 해석보충 -십일조에 대한 몇가지 언급</title><content type='html'>&lt;div align="justify"&gt;&lt;strong&gt;1&lt;/strong&gt;) &lt;strong&gt;십일조&lt;/strong&gt;는 예수님께 드려진다는 점에서 &lt;strong&gt;이미 맏물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것&lt;/strong&gt;이며 또한 &lt;strong&gt;모든 헌물들도 그와 같은 것으로 사실 야곱의 서원이라고 함을 이루는 것의 전형적인 것&lt;/strong&gt;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lt;strong&gt;야곱이 서원 중에 반드시 십분의 일과 헌물을 반드시 드리겠다고 하는 것&lt;/strong&gt;은 이러한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을 멀리서 바라봄에 대한 의지적 확신으로 나타남을 마음에 둘 수 있다. 즉 반드시 드리겠다는 것은 아무 의미없는 어떤 하나님께 정적인 의지적 차원의 확실성을 말하고자하는 것에만 국한시킬 수는 없는 것이라는 점이다.&lt;br /&gt;&lt;br /&gt;&lt;strong&gt;2&lt;/strong&gt;) 신명기 26장에서의 설교 본문 두 번째 본문에서 주목할 수 있는 것과 같이 그들을 구원하셨음에 대한 것과 그 맏물을 드림이라고 하는 것을 기억하고 이것은 &lt;strong&gt;십일조가 교회의 구원사역을 위한 것으로 사용되어져야 함&lt;/strong&gt;을 문맥적으로 읽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선교후원금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기본적인 활동으로서의 모습이기 때문에 교회 운영과 복음사역 전반을 위한 것으로 봄이 합당하다고 하겠다.&lt;br /&gt;&lt;br /&gt;&lt;strong&gt;3&lt;/strong&gt;) 본문에 나타나는 &lt;strong&gt;고아와 과부라고 하는 것&lt;/strong&gt;은 교회와 복음으로 낳게 되는 성도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는 것이 옳다고 하겠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교회의 신부로서의 모습을 주목할 때에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과 같이 현상적으로 보여질 수 있다는 점에서, 비록 참된 신부요 그리스도와 동행하고 있지만, 과부로 표현되어질 수도 있고 주님께서 함께하시며 동행하시지만 그 엠마오 두 제자와 같이 주님이 동행중에 계심이라고 하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상대적 입장에서 주목할 때에 복음으로 낳은 아이로서의 성도의 모습이 고아와 같이 보여질 것이요, 객이라고 하는 것은 주의 택함을 말할 수 없다고 하여도 청함을 받은 자들의 모습을 말하는 것으로 교회에 나오게 되어지는 현상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보편적으로 칭하신 것으로 주목할 수 있다는 것이다.&lt;br /&gt;&lt;br /&gt;이에 &lt;strong&gt;반대&lt;/strong&gt;되어질 수 있는 &lt;strong&gt;사회복음적 개념에서나 민중 해방신학적 입장에서는 가난하다는 개념과 고아와 과부를 일반사회적 언어로서만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lt;/strong&gt;, 중요한 것은 성경의 구약적 성례전적인 실제의식이라고 하는 것을 현상적 개념만으로 한정시켜서 비로소 적용 인식하는 가난한 자들이라는 표현이 사실성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하여서 사회복음으로서의 민중 해방신학자들은 답변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lt;strong&gt;답변의 여부와 상관없이&lt;/strong&gt; 그것이 &lt;strong&gt;사실로서 규정하는 실재는 그들에게는 없다는 것이 더 핵심적인 그들의 고민&lt;/strong&gt;이 될 것이다. &lt;/div&gt;&lt;p align="justify"&gt;&lt;br /&gt;&lt;strong&gt;4&lt;/strong&gt;) &lt;strong&gt;몇가지 오해&lt;/strong&gt;되어질 수 있는 것들을 지적하면 :&lt;br /&gt;&lt;br /&gt;&lt;strong&gt;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면&lt;/strong&gt; 예배당 출석의 당위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며, 소위&lt;strong&gt; &lt;/strong&gt;빈손으로 주 앞에 보이지 말라고 하심도 물질적 개념으로 비로소 행하기보다 자기 자신과 자기의 중심을 드림이라고 하는 것을 나타내고자 할 때에 마땅히 드릴 것을 구별하여 찾을 수 있음을 마음에 두지 않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십일조에 &lt;strong&gt;기복적 측면이 있으나 그것은 비로소의 개념과 정체성이 아니고, 헌신의 한 표현&lt;/strong&gt;이다,그리고 비유컨대 마치 여타 상황에 따라서 식사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여도 식사를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음과 같이, 십일조와 헌물은 우리 자신을 드림의 한 표현으로서 기본적인 신앙의 표현이며 증거인 것이다. 맏물로서의 자신을 드림이라는 것이 기본적인 온전한 것이므로 그 표현의 행위여부에 매이지 않는 자유가 있다고 하여도 분별없거나 또는 증인으로서의 직무적 태만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성도는 없다는 것이다.&lt;br /&gt;&lt;br /&gt;&lt;strong&gt;신명기 26장&lt;/strong&gt;과 달리 &lt;strong&gt;말라기서&lt;/strong&gt;의 십일조 개념은 하나님을 시험함이라든가 물질적 축복이 있다고 하는 것은 시대적 정황에 따라 십일조가 기복적 개념으로 정체성이 바뀐 것이 아니라 시대적 정황 속에서의 하나님의 말씀의 신실성을 나타내고 그 백성의 연약함을 받으셔서 지켜 보호해주심이라고 하는 실제적 중심을 가지도록 하시고 그러한 한 표현으로서의 물질적개념에서도 축복의 사실을 찾을 수 있게 하셔서 우리의 감당할 수 있게 하시거나, 감당치 못하는 가운데서의 피할 길을 예배하심으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할 것이다.&lt;br /&gt;&lt;br /&gt;&lt;strong&gt;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도적질하는 것&lt;/strong&gt;이란 말씀에 대하여서는,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상황이나 여하한 가운데서 드리지 못하였을 때에도 교회 예배당 출석과 경배는 당연한 것이다. 다만 이미 그러한 하나님의 구원을 마음에 두지 않고 기만적으로 교회에 나가서 기득권적인 행위를 하면서 십일조를 의도적으로 내지 않는 것은 자기 자신과 성도들의 잘못된 중심과 행위를 본받게 한다는 점에서 '양들'로서의 성도들을 기만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하심의 중심을 잃어 흩어지게 만드는 도적이라는 점을 말씀하시는 것이다.&lt;br /&gt;&lt;br /&gt;&lt;br /&gt;그리고 &lt;strong&gt;십일조와 헌물은 헌신과 함께 주의 구원에 대한 합당한 증거임을 교회에서는 가르쳐야 하고, 그 드림에 있어서는 강요가 아니라 드리는 자가 하나님 앞에서 신실성을 갖출 수 있고 그 중심의 정당함을 주관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받는 자리에 이름이 합당한 모습이라고 하겠다&lt;/strong&gt;.&lt;br /&gt;&lt;br /&gt;&lt;br /&gt;&lt;strong&gt;참고&lt;/strong&gt; : &lt;a href="http://preachings.blogspot.com/2007/11/blog-post.html"&gt;&lt;span style="color:#ff0000;"&gt;신명기 26장 설교 한편&lt;/span&gt;&lt;/a&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p&gt;&lt;/span&gt;&lt;/span&gt;&lt;div align="justify"&gt;&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lt;strong&gt;질문을 게스트 북에 남겨주세요&lt;/strong&gt;&lt;br /&gt;&lt;/span&gt;&lt;a href="http://geocities.yahoo.com/gb/sign?member=voswise"&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Sign Guestbook&lt;/span&gt;&lt;/a&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 &lt;/span&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a href="http://geocities.yahoo.com/gb/view?member=voswise"&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View Guestbook&lt;/span&gt;&lt;/a&gt;&lt;span style="font-size:180%;"&gt;&lt;br /&gt;&lt;/div&gt;&lt;/span&gt;&lt;p align="center"&gt;&lt;a href="http://easyhitcounters.com/stats.php?site=vosscare" target="_top"&gt;&lt;img alt="Free Counters" hspace="4" src="http://beta.easyhitcounters.com/counter/index.php?u=vosscare&amp;amp;s=messy" align="middle" vspace="2" border="0" /&gt;&lt;/a&gt;&lt;/p&gt;&lt;p align="justify"&gt;&lt;br /&gt;&lt;/p&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024085-3271158343891346752?l=agapeia.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3271158343891346752'/><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3271158343891346752'/><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agapeia.blogspot.com/2007/11/26.html' title='신명기26장 해석보충 -십일조에 대한 몇가지 언급'/><author><name>.</name><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024085.post-98320837823135828</id><published>2007-09-12T23:51:00.000+09:00</published><updated>2007-09-13T23:50:08.544+09:00</updated><title type='text'>아프간 피랍자 합동 기자회견 문답</title><content type='html'>&lt;div align="justify"&gt;(안양=연합뉴스) 김경태 기자 = 아프가니스탄 피랍자 21명은 12일 샘안양병원에서 퇴원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룹별로 다르기는 하지만) 일부는 24차례 이동하며 감금 상태에서 개종을 강요당하고 폭행을 당하면서 노예같은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lt;br /&gt;&lt;br /&gt;&lt;br /&gt;&lt;strong&gt;이들과의 일문일답 중 새로운 내용을 중심으로 요약했다. &lt;/strong&gt;&lt;br /&gt;&lt;br /&gt;-- &lt;strong&gt;외신에서 나온 '민소매 차림' 보도 등이 사실인가&lt;/strong&gt;.&lt;br /&gt;&lt;br /&gt;▲ (&lt;strong&gt;임현주&lt;/strong&gt;) 민소매 차림은 비상적인 보도다. 현지인 복장을 구매해 입고 온몸을 가리는 큰 스카프를 착용했다. (호화버스 보도에 대해) 매일 칸다하르로 운행되는 시외버스를 전세로 빌렸다. 검문하던 경찰들로부터 좋은 일 한다는 말을 들었고 가즈니 초소를 지나갈 때에는 환영받으며 지나갔다.&lt;br /&gt;&lt;br /&gt;&lt;br /&gt;-- &lt;strong&gt;국내 비난여론이 여전한데.&lt;/strong&gt;&lt;br /&gt;&lt;br /&gt;▲ (&lt;strong&gt;김경자&lt;/strong&gt;) 귀국해 언론을 접했을 때 저희 팀과 상관없는 많은 일들이 잘못 알려져 있어 안타까웠다.&lt;br /&gt;&lt;br /&gt;(&lt;strong&gt;유경식&lt;/strong&gt;) 민소매 차림, 쇼핑, 호화버스. 서면 여행자제요청 사전 인지 등은 전혀 사실 아니다. 교육.의료봉사를 했는데 마치 길거리에서 선교하고 개종을 요구한 것 처럼 알려졌다.&lt;br /&gt;&lt;br /&gt;&lt;br /&gt;-- &lt;strong&gt;이선영씨 미니홈피에 나온 '이슬람사원 예배'는 사실인가&lt;/strong&gt;.&lt;br /&gt;&lt;br /&gt;▲ (&lt;strong&gt;이선영&lt;/strong&gt;) 2005년 칸다하르 모스크를 방문했을 때 관리인 허락 하에 노래를 한 곡을 불렀다. 우연히 일어난 에피소드였고 그들의 종교를 침해하며 한 일 아니다.&lt;br /&gt;&lt;br /&gt;&lt;br /&gt;-- &lt;strong&gt;정부의 여행자제 공문에 대해 사전에 알고 있었나&lt;/strong&gt;.&lt;br /&gt;&lt;br /&gt;▲ (&lt;strong&gt;이선영&lt;/strong&gt;) 6월초부터 비자발급 일을 맡아 진행했는데 어떤 기관 단체나 기관으로부터 안전에 대한 공식 공문이나 서신, 공지를 받지 못했다. 다른 기관을 통해 갈 예정이었는데 필요없을 정도로 순조롭게 진행됐다. 작년에 어떤 단체가 행한 일을 우리가 한 일 처럼 알려진 것 같다.&lt;br /&gt;&lt;br /&gt;▲ &lt;strong&gt;그룹별 억류생활을 말해달라&lt;/strong&gt;.&lt;br /&gt;&lt;br /&gt;--&lt;br /&gt;(&lt;strong&gt;유경식&lt;/strong&gt;) 그룹별로 다르다. 비교적 잘 대해준데도 있고 그렇지 않은데도 있다. (&lt;strong&gt;유정화&lt;/strong&gt;) 죽음의 공포였다. 비디오를 여러 번 촬영했다. 구덩이가 파진 곳에서 기관총을 겨누는 상황이었다. 억류 마지막에는 이슬람을 믿으면 살려주겠다고 위협했다. 자극할까 소리 내 울지못하고 임현주씨 품에 안겨 반나절을 보내야 했다. 지금도 카메라를 바로 볼 수 없다.&lt;br /&gt;&lt;br /&gt;(&lt;strong&gt;제창희&lt;/strong&gt;) 남부 산악지대(해발 3천ｍ)에서 20일을 보냈다. 산을 깎아 만든 토굴에서 생활했다. (40일간 입었다는 분홍색 반소매 티와 구멍뚫린 연회색 바지를 공개) 맨 손으로 오토바이 길을 내게 했고 물 기는 것, 불 때는 것 이외에 토굴에 들어온 독사를 나무로 잡아야 했다. 구타를 많이 당했다. 대검을 총에 착검한 상태에서 종교를 강요당했다. 목에 총기로 겨누고 나뭇가지와 발로 때렸다. 송병우씨는 구덩이에 빠져 가슴 뼈를 다쳤다. 씻지 못하고 필수품도 없었다. 화장지가 없어 책 뜯어 휴지로 사용했다. 여성들은 몸을 가리고 있어 머리에 진물이 나고 해충에 많이 물렸다.&lt;br /&gt;&lt;br /&gt;(&lt;strong&gt;차혜진&lt;/strong&gt;) 12번 이동했다. 처음엔 헛간 창고서 탈레반과 24시간 함께 지냈다. 나중에 민가에서 지내며 오토바이로 2명씩 이동했다. 중간에 도보로 이동할 때 남자들은 눈을 가렸다.&lt;br /&gt;&lt;br /&gt;(&lt;strong&gt;한지영&lt;/strong&gt;) 좁은 공간에서 탈레반과 함께 있었다. (울먹이며) 빛이 들어오지 않는 방 안에서 10여 일간 하루 1시간씩 자며 거의 먹지못했다. 생리적 고통도 있지만 감금생활에 따른 심리적 고통이 크다.&lt;br /&gt;&lt;br /&gt;(&lt;strong&gt;고세훈&lt;/strong&gt;) 우리 팀은 매일 밤 이동했다. 민가서 24번 이동했다. 전쟁지역이라 그런지 화장실 갈 때 폭탄이 터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한 방에 탈레반 2명의 감시를 받으며 함께 먹고 자는 상황이었다.&lt;br /&gt;&lt;br /&gt;&lt;br /&gt;-- &lt;strong&gt;개종 강요와 폭력이 있었다는데&lt;/strong&gt;.&lt;br /&gt;&lt;br /&gt;▲ (&lt;strong&gt;제창희&lt;/strong&gt;) 개종 강요하면서 그 중 몇 명에게 폭력을 가했다. 돌을 던지고 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위협했다. 나뭇가지를 꺾어 때리며 개종을 강요했다. 여자들도 토굴로 들어와 총으로 위협하며 개종 강요했다. 5번 정도 기도했는데 개종문을 따라 하라고 시켜면서 반복적으로 때렸다.&lt;br /&gt;&lt;br /&gt;&lt;br /&gt;-- &lt;strong&gt;배형규 목사 피살 상황은&lt;/strong&gt;.&lt;br /&gt;&lt;br /&gt;▲ (&lt;strong&gt;한지영&lt;/strong&gt;) 두 그룹을 나눠 민가에 도착하자 마자 배 목사의 성과 이름을 확인하고 목사님을 데리고 나갔다. 우리를 쳐다보지 않으며 걸음을 옮기면서 '믿음으로 승리하세요'라고 의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게 마지막이었다.&lt;br /&gt;&lt;br /&gt;&lt;br /&gt;-- &lt;strong&gt;서명화씨 '바지 피랍일지'에 집과 통화했다는 내용이 있는데&lt;/strong&gt;.&lt;br /&gt;&lt;br /&gt;▲ (&lt;strong&gt;서명화&lt;/strong&gt;) 한 집에 탈레반 3명과 같이 있을 때 우호적으로 대해줬다. 아프간 이름도 지어주었다. 간절히 통화를 원한다고 해 남편과 짧게 통화했다. '안전하게 잘 있다.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끊었다.&lt;br /&gt;&lt;br /&gt;&lt;br /&gt;-- &lt;strong&gt;동영상 촬영 및 언론과 전화통화한 과정은&lt;/strong&gt;.&lt;br /&gt;&lt;br /&gt;▲ (&lt;strong&gt;임현주&lt;/strong&gt;) 강제로 서너번했다. 현지어 알기에 네 다섯번 통화했는데 무조건 &lt;strong&gt;BBC&lt;/strong&gt;라고 얘기했다. 대부분 아프고 매일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요구를 듣지 않으면 살해하겠다고 했다. 대통령, 교황, 유엔 사무총장 이름 대며 간절하게 연기하라고 했다.&lt;br /&gt;&lt;br /&gt;(&lt;strong&gt;유정화&lt;/strong&gt;) 영어로 했다.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아 천장에 매달아 놓아 큰소리로 외쳤다. 위협적인 상황에서 시킨대로 했다. 두번째 인터뷰에선 아픈 것을 말하지 말라고 했다.&lt;br /&gt;&lt;br /&gt;&lt;br /&gt;- &lt;strong&gt;잘 대해준 탈레반도 있나&lt;/strong&gt;.&lt;br /&gt;&lt;br /&gt;(&lt;strong&gt;고세훈&lt;/strong&gt;) 매일 이동하며 샌들 끈이 끊어져 운동화를 사왔는데 한국제품이더라. 이동이 수월했다.&lt;br /&gt;&lt;br /&gt;(&lt;strong&gt;서경석&lt;/strong&gt;) 누나와 떨어져 걱정인데 탈레반에게 말해 쪽지를 일주일에 한 번 주고받았다.&lt;br /&gt;&lt;br /&gt;&lt;br /&gt;-- &lt;strong&gt;앞으로 아프간 등 위험지역에서 선교할 의향이 있는지&lt;/strong&gt;.&lt;br /&gt;&lt;br /&gt;▲ (&lt;strong&gt;유경식&lt;/strong&gt;) 해외선교 전반에 대해서는 교계에서 논의 중이어서 정리되면 그 것에 따를 생각이다.&lt;br /&gt;&lt;br /&gt;&lt;br /&gt;-- &lt;strong&gt;몸값 지불 및 구상권 청구 논란에 대한 생각은&lt;/strong&gt;.&lt;br /&gt;&lt;br /&gt;▲ (&lt;strong&gt;유경식&lt;/strong&gt;) 구상권은 이미 정부가 입장을 밝혔다. 교회에서도 입장을 밝힌 것 알고 있다. 교회와 정부 하는대로 따라 갈 것이다. 국민과 정부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큰 심려 끼쳐 거듭 죄송하다. 죽었을 것인데 살아난 만큼 남은 삶을 국민 사랑과 기대에 부응하겠다. 사랑하고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겠다.&lt;br /&gt;&lt;br /&gt;&lt;br /&gt;-- &lt;strong&gt;이주연씨 어머니 간증 동영상 논란에 대해&lt;/strong&gt;.&lt;br /&gt;&lt;br /&gt;▲ (&lt;strong&gt;이주연&lt;/strong&gt;) 동영상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시기가 부적절하거나 내용 등에서 불편을 느낀 분들이 많다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strong&gt;출처&lt;/strong&gt; : 예수그리스도 향기카페, ☎ Cafe 자유게시판 ☎ 글쓴이: &lt;strong&gt;요엘&lt;/strong&gt; 번호 : 20894 조회수 : 28 2007.09.12 15:29&lt;br /&gt;&lt;br /&gt;&lt;strong&gt;글쓴이 견해&lt;/strong&gt; : 피랍자들의 언급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lt;strong&gt;정부의 위험에 대한 고지로서의 공문을 받은 것이 없다는 언급&lt;/strong&gt;에서 볼 때 여러 언론에서의 &lt;strong&gt;'국가의 권고를 무시하고'라는 말을 중심으로 비판 언급 한 것은 잘못된 오보임을 마음에 두게 된다&lt;/strong&gt;.&lt;br /&gt;&lt;br /&gt;&lt;strong&gt;이선영&lt;/strong&gt; : 제가 6월부터 비자 발급과 관련된 일을 진행했다. 비자 발급 과정에서 어떤 단체나 기관에서도 안전에 대한 공식적인 공문을 받지 못했다.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었다. 돌아와서 인터넷에서 떠도는 글에 대해 들었는데, 지난해 다른 단체에서 행한 일이 우리가 한 일처럼 알려졌다. 어떤 단체나 기관으로부터 그런 공지나 서신을 받은 적 없다.&lt;br /&gt;&lt;br /&gt;&lt;strong&gt;이선영&lt;/strong&gt; : 거듭 말하지만 돌아와서 그런 내용을 듣고 당황했다. 비자 관련해서 초청장을 발급 받을 때 단체나 기관으로부터 공문을 받거나 이야기를 들은 적 없다. 순조롭게 비자를 발급받았다. (비자 발급을 거부당한 적 있다고 들었다.) 그건 비자 문제가 아니라 초청장에 관한 일인데, 위험해서가 아니라 단체 간 이해관계 때문이다.&lt;br /&gt;&lt;br /&gt;&lt;strong&gt;출처&lt;/strong&gt; : 예수그리스도 향기카페, ☎ Cafe 자유게시판 ☎ 글쓴이: &lt;strong&gt;yes24&lt;/strong&gt; 번호 : 20898조회수 : 402007.09.13 08:09  '피랍자 21명 퇴원 기자회견서 억류 과정 상세히 설명' 글 중에서..&lt;br /&gt;&lt;br /&gt;&lt;br /&gt;&lt;/div&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span&gt;&lt;/span&gt;&lt;div align="justify"&gt;&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lt;strong&gt;질문을 게스트 북에 남겨주세요&lt;/strong&gt;&lt;br /&gt;&lt;/span&gt;&lt;a href="http://geocities.yahoo.com/gb/sign?member=voswise"&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Sign Guestbook&lt;/span&gt;&lt;/a&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 &lt;/span&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a href="http://geocities.yahoo.com/gb/view?member=voswise"&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View Guestbook&lt;/span&gt;&lt;/a&gt;&lt;span style="font-size:180%;"&gt;&lt;br /&gt;&lt;/div&gt;&lt;/span&gt;&lt;p align="center"&gt;&lt;a href="http://easyhitcounters.com/stats.php?site=vosscare" target="_top"&gt;&lt;img alt="Free Counters" hspace="4" src="http://beta.easyhitcounters.com/counter/index.php?u=vosscare&amp;amp;s=messy" align="middle" vspace="2" border="0" /&gt;&lt;/a&gt;&lt;/p&gt;&lt;p align="justify"&gt;&lt;br /&gt;&lt;/p&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024085-98320837823135828?l=agapeia.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98320837823135828'/><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98320837823135828'/><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agapeia.blogspot.com/2007/09/blog-post_12.html' title='아프간 피랍자 합동 기자회견 문답'/><author><name>.</name><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024085.post-3028203553619859360</id><published>2007-09-11T00:49:00.000+09:00</published><updated>2007-09-11T01:06:56.111+09:00</updated><title type='text'>사실 이해에 있어서 주의할 점</title><content type='html'>&lt;div align="justify"&gt;하나님으로부터, 참된 신으로부터 정당함을 따른 사실판단을 한다고 할 때에, &lt;strong&gt;분명히 해야 할 것은 개념없는 이교도들의 개념없는 맹목적인 신의 이름으로 인한 임의적 배타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lt;/strong&gt;.&lt;br /&gt;&lt;br /&gt;&lt;strong&gt;1&lt;/strong&gt;)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얻는 일상적인 것도 있기에 그것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lt;br /&gt;&lt;br /&gt;&lt;strong&gt;2&lt;/strong&gt;) 여러가지 상대적 입장이 있다고 하여도 그리고 그것을 고려해볼 때에 하나님의 말씀하심에서 해석되어질 수 있는 것으로서의 정당함을 부여할 수 있는 현실적인 것이냐에 대한 판단과 그것을 사실로 받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 그것이 허용되지 않을 때, 현실적인 것과 반대되어지는 것을 사실화하시기를 기뻐할 때는 그것을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lt;strong&gt;3&lt;/strong&gt;) 인격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경에 맞지 않거나 인격적이지 못한 것을 명하시지 않는다는 것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lt;br /&gt;&lt;br /&gt;&lt;strong&gt;4&lt;/strong&gt;) 성경이 기록되어지는 계시의 시대와 현실적인 시대의 영감은 또한 차이가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이 기록되어지는 특별영감의 시대와 성경이 기록완료된 현대에서의 하나님의 영적 감동은 차이가 있습니다.&lt;br /&gt;&lt;br /&gt;특별영감으로서의 그 기록적 말씀의 영감으로부터의 영적인 영감(&lt;strong&gt;inspiration&lt;/strong&gt;)적 정당함을 얻어 사실화하며 납득함의 당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기록의 특별영감과 현대의 영적 영감이라고 하는 것을 그 범주가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고 동일범주에서 다루는 것과 같은 오류는 성경해석의 옳음을 말할 수 없다는 것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lt;/div&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span&gt;&lt;/span&gt;&lt;a href="http://geocities.com/vosscare"&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http://geocities.com/vosscare&lt;/span&gt;&lt;/a&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 &lt;/span&gt;&lt;br /&gt;&lt;p align="justify"&gt;&lt;/p&gt;&lt;div align="justify"&gt;&lt;a href="http://www.geocities.com/voswise/about.html"&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글쓴이&lt;/span&gt;&lt;/a&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lt;strong&gt;질문을 게스트 북에 남겨주세요&lt;/strong&gt;&lt;br /&gt;&lt;/span&gt;&lt;a href="http://geocities.yahoo.com/gb/sign?member=voswise"&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Sign Guestbook&lt;/span&gt;&lt;/a&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 &lt;/span&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a href="http://geocities.yahoo.com/gb/view?member=voswise"&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View Guestbook&lt;/span&gt;&lt;/a&gt;&lt;span style="font-size:180%;"&gt;&lt;br /&gt;&lt;/div&gt;&lt;/span&gt;&lt;p align="center"&gt;&lt;a href="http://easyhitcounters.com/stats.php?site=vosscare" target="_top"&gt;&lt;img alt="Free Counters" hspace="4" src="http://beta.easyhitcounters.com/counter/index.php?u=vosscare&amp;amp;s=messy" align="middle" vspace="2" border="0" /&gt;&lt;/a&gt;&lt;/p&gt;&lt;p align="justify"&gt;&lt;br /&gt;&lt;/p&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024085-3028203553619859360?l=agapeia.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3028203553619859360'/><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3028203553619859360'/><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agapeia.blogspot.com/2007/09/blog-post_11.html' title='사실 이해에 있어서 주의할 점'/><author><name>.</name><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024085.post-6352266581764104084</id><published>2007-09-04T19:16:00.000+09:00</published><updated>2007-09-13T00:20:38.056+09:00</updated><title type='text'>비판의 추이(推移)</title><content type='html'>&lt;p align="justify"&gt;처음에는 교회의 목사직에 대한 부당함과 그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노력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교회의 질서를 이해하지 못하고 상식적인 개념으로 잘못되었던 것을 지적하였습니다. 단적으로 설교와 선동의 개념을 혼동한 또는 혼동의 의도적 개념으로 접근한 모습이었습니다.&lt;/p&gt;&lt;p align="justify"&gt;그리고 두 번째로는 &lt;a href="http://agapeia.blogspot.com/2007/09/blog-post.html"&gt;&lt;span style="color:#d40a00;"&gt;&lt;strong&gt;세금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서 &lt;/strong&gt;&lt;/span&gt;&lt;/a&gt;그 구상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와 종교의 분립이라는 헌법적 정치적 원론을 마음에 두지 못한 것이었습니다.&lt;/p&gt;&lt;p align="justify"&gt;그리고 실정법 이해에 왜곡으로 범법자로서의 피랍된 형제자매들을 이해하려는 잘못된 노력들도 있었습니다. &lt;a href="http://sophiadei.blogspot.com/2007/08/blog-post.html"&gt;&lt;span style="color:#d40a00;"&gt;&lt;strong&gt;이슬람적 실정법의 정당함은 이미 부정되었다는 것을 언급할 수 있고&lt;/strong&gt;&lt;/span&gt;&lt;/a&gt; 또한 현실적인 법으로도 여행 금지가 아닌 제한구역이라는 점에서는 적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lt;a href="http://bbs4.worldn.media.daum.net/griffin/do/country/bbs/read?bbsId=N001&amp;amp;articleId=25741&amp;pageIndex=1&amp;amp;searchKey=&amp;searchValue"&gt;&lt;span style="color:#f10b00;"&gt;&lt;strong&gt;외국에서도 그것을 인정하는 상식적인 것입니다&lt;/strong&gt;&lt;/span&gt;&lt;/a&gt;.&lt;/p&gt;&lt;p align="justify"&gt;그리고 이번에는 국가의 행보에 대하여서도 납세의 의무를 가진자들로서 참정적 권세로 여론을 임의적으로 조작하려는 노력들이 있습니다. 국가의 행보라고 함에 있어서는 여러가지로 부적절하다고들 하지만 그러나 국민을 보호함에 있어서는 &lt;a href="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S2D&amp;amp;amp;amp;amp;amp;amp;amp;amp;office_id=022&amp;article_id=0000246682&amp;amp;section_id=104&amp;section_id2=234&amp;amp;menu_id=104"&gt;&lt;span style="color:#f10b00;"&gt;&lt;strong&gt;다른 나라의 예에서도 인정되어질 수 있음을 마음에 둘 때&lt;/strong&gt;&lt;/span&gt;&lt;/a&gt;에 독설적 입장은 의미를 상실한다고 하겠습니다.&lt;/p&gt;&lt;p align="justify"&gt;여러 &lt;strong&gt;여론의 환기를 위한 투표라고 하는 것&lt;/strong&gt;도 전문적인 언어로서의 선교와 그에 따른 사고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고 상식적인 측면만을 고려하여서 실시된다면 그것은 인식의 &lt;strong&gt;통계의 표본을 잘못 설정한 것으로 그 결과의 여부라고 하는 것은 어떤 보편적 규정적 역활을 할 수 있는 자료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것&lt;/strong&gt;입니다.&lt;/p&gt;&lt;p align="justify"&gt;&lt;br /&gt;&lt;br /&gt;&lt;br /&gt;&lt;strong&gt;참고&lt;/strong&gt; : &lt;a href="http://agapeia.blogspot.com/2007/09/blog-post_12.html"&gt;&lt;strong&gt;&lt;span style="color:#cc0000;"&gt;아프간 피랍자 합동 기자회견 문답&lt;/span&gt;&lt;/strong&gt; &lt;/a&gt;&lt;br /&gt;&lt;br /&gt;&lt;strong&gt;글쓴이 견해&lt;/strong&gt; : 피랍자들의 언급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lt;strong&gt;정부의 위험에 대한 고지로서의 공문을 받은 것이 없다는 언급&lt;/strong&gt;에서 볼 때 여러 언론에서의 &lt;strong&gt;'국가의 권고를 무시하고'라는 말을 주되게 한 것은 잘못된 오보임을 마음에 두게 된다&lt;/strong&gt;.&lt;br /&gt;&lt;br /&gt;&lt;br /&gt;&lt;/span&gt;&lt;/span&gt;&lt;a href="http://geocities.com/vosscare"&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http://geocities.com/vosscare&lt;/span&gt;&lt;/a&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 &lt;/span&gt;&lt;br /&gt;&lt;/p&gt;&lt;p align="justify"&gt;&lt;/p&gt;&lt;div align="justify"&gt;&lt;a href="http://www.geocities.com/voswise/about.html"&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글쓴이&lt;/span&gt;&lt;/a&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lt;strong&gt;질문을 게스트 북에 남겨주세요&lt;/strong&gt;&lt;br /&gt;&lt;/span&gt;&lt;a href="http://geocities.yahoo.com/gb/sign?member=voswise"&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Sign Guestbook&lt;/span&gt;&lt;/a&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 &lt;/span&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a href="http://geocities.yahoo.com/gb/view?member=voswise"&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View Guestbook&lt;/span&gt;&lt;/a&gt;&lt;span style="font-size:180%;"&gt;&lt;br /&gt;&lt;/div&gt;&lt;/span&gt;&lt;p align="center"&gt;&lt;a href="http://easyhitcounters.com/stats.php?site=vosscare" target="_top"&gt;&lt;img alt="Free Counters" hspace="4" src="http://beta.easyhitcounters.com/counter/index.php?u=vosscare&amp;amp;s=messy" align="middle" vspace="2" border="0" /&gt;&lt;/a&gt;&lt;/p&gt;&lt;p align="justify"&gt;&lt;br /&gt;&lt;/p&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024085-6352266581764104084?l=agapeia.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lated' href='http://geocities.com/vosscare' title='비판의 추이(推移)'/><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6352266581764104084'/><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6352266581764104084'/><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agapeia.blogspot.com/2007/09/blog-post_04.html' title='비판의 추이(推移)'/><author><name>.</name><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024085.post-455440847943293468</id><published>2007-09-03T01:53:00.000+09:00</published><updated>2007-09-11T01:22:17.172+09:00</updated><title type='text'>종교세에 대햐여 (납세와 참정권)</title><content type='html'>&lt;div align="justify"&gt;&lt;strong&gt;납세와 참정권&lt;/strong&gt;..&lt;br /&gt;&lt;br /&gt;&lt;br /&gt;국가의 어려운 제정상태를 의식해서 세금의 적절한 확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옳다고 봅니다. 그러나 세금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돈을 벌기 위한 기업으로서의 노력적 당위성이 있다고하면 그것이 당위성을 가지고 있지만, 돈을 벌기위한 것과 이윤창출이라는 것을 따르지 않는다면 세금징수로서의 의미와 규정은 성립되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lt;strong&gt;각주1&lt;/strong&gt;)&lt;br /&gt;&lt;br /&gt;아이들이 부모에게 용돈 받는 것과 같은 것도 앞으로 세금으로 거두는 것이 좋겠다.. 나라가 어려우니까.. 그러한 극단적인 측면을 야기하는 것과 비교하는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lt;br /&gt;&lt;br /&gt;고 소득 탈루혐의가 있는 전문업종의 사람들의 세금을 받게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돈을 벌기위한 것이 아닌 것에 대하여서 세금을 징수하는 것은 기만된 여론조작이라고 함을 읽을 수 있고 국민 여론적 통계는 이러한 기본적인 &lt;strong&gt;세금의 의미를 마음에 두지 않는 것이라고 함에 따라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서의 당위성을 가지지 않는다고 함이 옳은 것입니다&lt;/strong&gt;.&lt;br /&gt;&lt;br /&gt;&lt;br /&gt;&lt;strong&gt;통계의 중요성과 고려는 마음에 두어야 하지만 그러한 그러한 조작과 기만성도 같이 있음에 대한 것도 적지 않게 마음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lt;/strong&gt;.&lt;br /&gt;&lt;br /&gt;&lt;br /&gt;&lt;strong&gt;납세를 할 경우 고려해야 할 것은&lt;/strong&gt;..&lt;br /&gt;&lt;br /&gt;&lt;strong&gt;납세를 하게 되면 참정권과 같은 것을 의식해야 하는 것입니다&lt;/strong&gt;. 교회의 성직자를 마음에 두고 언급되는 것이 기본인데.. 그들이 기초생계비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생활비를 국가가 지원해야 합니다.(&lt;strong&gt;각주2&lt;/strong&gt;)&lt;br /&gt;&lt;br /&gt;기독교를 비판했던 프랑스에서도 똘레랑스라는 입장에서 정교의 분리를 말하고 있거늘, &lt;strong&gt;참정권도 따라온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납세에 대한 의무만 강요한다는 것은 정교의 혼란을 가져올 것에 대한 생각없는 입장이 될 것입니다&lt;/strong&gt;.&lt;br /&gt;&lt;br /&gt;&lt;br /&gt;물론 기독교에서 이미 그러한 입장을 취하는 &lt;strong&gt;자유주의자들&lt;/strong&gt;이 있는데 그래서 그러한 정치에 대한 호응과 그러한 참정권적 입장에 찬성하고 있고 그것에서 주고 받는 세상의 청지기의 길을 걷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입장이 기독교의 참된 실재적 입장은 아니라는 것은 성경에서 불의한 청지기적 비유의 말씀에서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해외의 경우를 말하고 있는데 해외의 경우에서도 &lt;strong&gt;신학적 사조&lt;/strong&gt;라고 하는 것이 헝켜서 자유주의적 개념에서 정교의 분리적 입장을 말하지 않는 자들도 있고 그들의 주류적 개념에서 있게되어지는 상황들을 고려하지 않고 예를 발취하는 것도 분별없는 인용적 정신이고 그러한 정신에서 국민의 여론을 기만하는 행위를 세운다면 옳은 것은 아닙니다.&lt;br /&gt;&lt;br /&gt;&lt;br /&gt;&lt;strong&gt;정교의 분리&lt;/strong&gt;.. 그것을 원치 않는 것이 참정권을 무시한 납세의 당위성을 말하는 어리석음인 것입니다. 국가의 혼란을 야기하지 않으려면 똘레랑스적인 그러면서도 정교의 분리적 입장을 말할 수 있는 종교인 성직자의 세금운운은 하지 않는 것이 세상적으로도 지혜로울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lt;br /&gt;&lt;strong&gt;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서 정교의 상관성이 있으나 정치가 신앙을 비로소 말할 수 없는 것이고 그러한 가운데서도 신앙적 측면에서 정치를 말할 수 있는 합리적 사유의 방향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lt;/strong&gt;.&lt;br /&gt;&lt;br /&gt;&lt;strong&gt;세상적으로 말한 것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이런 국가와 신앙의 범주이해에 대한 결핍으로 오도되어진 여론을 등에 엎고 정교혼합에 따른 국가의 위기를 초래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을 말했습니다.&lt;/strong&gt;&lt;br /&gt;&lt;br /&gt;&lt;br /&gt;그리고 그러한 세상적인 것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주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서 우리의 삶의 존재를 맡긴다는 중심의 신앙고백으로 돈과 상관없이 섬기는 것이 &lt;strong&gt;기독교의 종들의 모습의 실상&lt;/strong&gt;입니다.&lt;br /&gt;&lt;br /&gt;&lt;br /&gt;세대가 어렵다보니 그러한 섬김을 섬김으로나타나는 예물을 돈벌이로 생각해서 탐내고 있는 모습을 볼 때에 과연 돈을 사랑하는 악함이 국가의 어려움을 초래하는 악함으로 나타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lt;br /&gt;&lt;br /&gt;&lt;br /&gt;국민 여론의 수렴이라는, 통계라는 개념의 고려성을 실제성으로 생각하기 앞서 납세라고 함의 기준점과 의미와 그에 따른 청구를 바르게 할 수 있도록 하심이 좋겠고, 주의 종들은 그 섬기는 예물을 바르게 받지 못할 때에는 섬기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책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lt;/div&gt;&lt;p align="justify"&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span&gt;&lt;/span&gt;&lt;a href="http://geocities.com/vosscare"&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http://geocities.com/vosscare&lt;/span&gt;&lt;/a&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 &lt;/span&gt;&lt;br /&gt;&lt;p align="justify"&gt;&lt;/p&gt;&lt;div align="justify"&gt;&lt;a href="http://www.geocities.com/voswise/about.html"&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글쓴이&lt;/span&gt;&lt;/a&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br /&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lt;strong&gt;질문을 게스트 북에 남겨주세요&lt;/strong&gt;&lt;br /&gt;&lt;/span&gt;&lt;a href="http://geocities.yahoo.com/gb/sign?member=voswise"&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Sign Guestbook&lt;/span&gt;&lt;/a&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 &lt;/span&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a href="http://geocities.yahoo.com/gb/view?member=voswise"&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View Guestbook&lt;/span&gt;&lt;/a&gt;&lt;span style="font-size:180%;"&gt;&lt;br /&gt;&lt;/div&gt;&lt;/span&gt;&lt;p align="center"&gt;&lt;a href="http://easyhitcounters.com/stats.php?site=vosscare" target="_top"&gt;&lt;img alt="Free Counters" hspace="4" src="http://beta.easyhitcounters.com/counter/index.php?u=vosscare&amp;amp;s=messy" align="middle" vspace="2" border="0" /&gt;&lt;/a&gt;&lt;/p&gt;&lt;p align="justify"&gt;&lt;br /&gt;&lt;/p&gt;&lt;p align="justify"&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strong&gt;각주1&lt;/strong&gt;) 직업이라고 하는 것은 재물을 얻기 위한 것으로서의 합목적적인 활동을 전제로하고 있고 또한 그러한 것을 이루어나가는 것이라고 할 때에, 직업이라고 해석 가능한 것이, 직업 비로소 그 직업 자체로 규정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닌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직업뿐만 아니라 비영리단체라는 측면에서는 그와 같은 측면의 경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교회와 같은 종교적 입장에서는 수입을 위한 합목적적 경우가 아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익창출이라는 개념으로 교회와 성직자에 대한 세금을 의식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lt;br /&gt;&lt;br /&gt;&lt;strong&gt;각주2&lt;/strong&gt;)예를 들어, 한해에도 신학교에서 졸업하는 신학생들이 몇백명씩 된다고 할 때에 그들이 그러한 참정권에 따른 권익을 주장하고 교회 개척을 한다면 그들을 국가가 생활비를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기초생활비로 그들을 도와야 할 것입니다.&lt;br /&gt;&lt;br /&gt;그리고 그러한 정치적 입장에서 도움을 받는다면 성직자는 설교시간에 '정치적인 이야기와 비판을 할 수도 있고 선동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단체들이 모두 정치적인 참정권에 따라서 '이익단체'로서 '압력단체'로서 맨날 국가에 데모한다고 해도 전혀 불법이 아닐 것입니다. &lt;br /&gt;&lt;br /&gt;앞서 언급되어진 상황과 또한 정치적 참정권을 통한 권리를 위한 투쟁은 합법적인 것이 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합법적으로 국세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창구도 보장되어지고 해석적 적용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 합법적 당위성을 가지는 것입니다.&lt;/p&gt;&lt;p&gt;&lt;/p&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024085-455440847943293468?l=agapeia.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455440847943293468'/><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455440847943293468'/><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agapeia.blogspot.com/2007/09/blog-post.html' title='종교세에 대햐여 (납세와 참정권)'/><author><name>.</name><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024085.post-116417008205709831</id><published>2006-11-22T13:06:00.000+09:00</published><updated>2006-12-26T13:26:07.500+09:00</updated><title type='text'>작은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title><content type='html'>&lt;div align="justify"&gt;안녕하세요..&lt;/div&gt;&lt;br /&gt;&lt;div align="justify"&gt;저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실 때에 작은 홈페이지 방명록을 사용하실수 있습니다. 독자의 편의를 따라서 여러사이트의 &lt;strong&gt;작은 홈페이지 방명록&lt;/strong&gt;을 준비했습니다. 이들 홈페이지는 &lt;strong&gt;로그인없이&lt;/strong&gt; 글을 쓰실 수 있도록 했습니다.&lt;/div&gt;&lt;br /&gt;&lt;div align="justify"&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a href="http://hompy.dreamwiz.com/voswise"&gt;드림위즈 홈페이지 방명록&lt;/a&gt;, &lt;/div&gt;&lt;div align="justify"&gt;&lt;a href="http://q.freechal.com/Service/default.asp?id=sofj"&gt;프리첼 홈페이지 방명록&lt;/a&gt;, &lt;/div&gt;&lt;div align="justify"&gt;&lt;a href="http://hompy.sayclub.com/vossofj"&gt;세이홈페이지 방명록&lt;/a&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a href="http://www.cyworld.com/soteria"&gt;싸이월드홈페이지 방명록&lt;/a&gt;,&lt;/div&gt;&lt;br /&gt;&lt;br /&gt;&lt;div align="justify"&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strong&gt;참고해주세요..&lt;/strong&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span style="font-size:85%;"&gt;(각 작은 홈페이지 방명록에 대하여)&lt;/span&gt; &lt;/div&gt;&lt;div align="justify"&gt;&lt;/div&gt;&lt;br /&gt;&lt;div align="justify"&gt;&lt;strong&gt;1&lt;/strong&gt;) 드림위즈 프리첼 그리고 세이클럽 홈페이지들은 &lt;strong&gt;글자수 제한&lt;/strong&gt;이 있어서 간단하게 한말씀하실 수 있는 경우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lt;/div&gt;&lt;div align="justify"&gt;&lt;strong&gt;2&lt;/strong&gt;) 프리첼의 경우는 &lt;strong&gt;'쉿 너만 봐'&lt;/strong&gt;기능으로 &lt;strong&gt;비공개&lt;/strong&gt;적으로 말씀하실 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lt;/div&gt;&lt;div align="justify"&gt;&lt;strong&gt;3&lt;/strong&gt;) 싸이월드 방명록(&lt;strong&gt;visitor&lt;/strong&gt;)인 경우는 &lt;strong&gt;글자수 제한은 없는 것&lt;/strong&gt;같습니다. &lt;strong&gt;논쟁도 가능&lt;/strong&gt;하지만 저만 답글을 쓸 수 있고 논쟁의 진행상 새롭게 저의 답글에 &lt;strong&gt;다시 답글&lt;/strong&gt;을 쓰는 기능은 &lt;strong&gt;지원되지 않습니다.&lt;/strong&gt; 그렇지만 말로써의 글의 &lt;strong&gt;많고 적음에 상관없이&lt;/strong&gt; 공개적으로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lt;/div&gt;&lt;div align="justify"&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div&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024085-116417008205709831?l=agapeia.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lated' href='http://www.geocities.com/voswise/favorite1.html' title='작은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116417008205709831'/><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116417008205709831'/><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agapeia.blogspot.com/2006/11/blog-post_22.html' title='작은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author><name>.</name><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024085.post-116351777511690216</id><published>2006-11-15T00:12:00.000+09:00</published><updated>2006-11-17T18:53:17.233+09:00</updated><title type='text'>성경말씀대로 살아야 할 이유</title><content type='html'>&lt;div align="justify"&gt;&lt;strong&gt;앞서 언급하게 되는 것에 대하여&lt;/strong&gt;&lt;br /&gt;&lt;br /&gt;우리가 성경말씀대로 살아야 할 이유라고 하는 것보다도 앞서는 진리와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lt;strong&gt;기독교의 하나님은 참된 하나님이시라는 것&lt;/strong&gt;(&lt;strong&gt;각주1&lt;/strong&gt;)과 그러한 진리와 사실로 인해서 우리 인생의 행보의 사실을 말하게 되고 또한 그 행보를 위한 실제적 사실도 말하게 되는데 그것의 근거가 성경말씀이라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물론 형식적 순환론적 모순이라는 판단이 가능하지만 그러한 것이 기각되어지는 것은 또한 앞서 합당하게 마음에 두게 되어지는 신의식과 신지직이라는 것의 실존으로부터의 타당성을 힘입는 것이기 때문입니다.&lt;br /&gt;&lt;br /&gt;&lt;strong&gt;본론에 즈음해서&lt;/strong&gt;&lt;br /&gt;&lt;br /&gt;성경대로 살아야 할 이유라고 하는 것과 그것에 앞서는 진리와 사실은 하나님이 &lt;a href="http://veritasdei.blogspot.com/2005_04_01_veritasdei_archive.html#111467130405938837"&gt;'참된 하나님'(출 3:14)&lt;/a&gt;이시기 때문입니다.&lt;br /&gt;&lt;br /&gt;먼저 이러한 사실에 반론적 입장의 고전적 입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은 니체의 입장인데, 그것은 인식론적 존재론에 입각한 임의적 신해석과 그 비판이라고 하는 것을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말할 수 있다는 것과 정당하다는 것은 항상 양립되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lt;br /&gt;&lt;br /&gt;자존의 하나님이 참되다고 함을 핑계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인식적 한계내에서 또는 한계밖이라는 이성적 규정의 탈실존을 말한다고 하여도 이성의 객관적 근거지움이라고 하는, 이성의 재가를 받고 이성의 재구성에 따른 구성체로서의 타당성을 입는다는 소위 속된 표현으로 등떠밀리어 신의 자리에 서게 되는 자들은 진정한 신이 아닌 것입니다.&lt;br /&gt;&lt;br /&gt;&lt;strong&gt;니체가 생각했다고 하는 철학의 입장&lt;/strong&gt;(&lt;strong&gt;각주2&lt;/strong&gt;)에서 본다면 결국 그러한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에서는 &lt;strong&gt;인위적인 신이라는 개념에서 참된 신을 말하지 못한다고 한 것은 정직할 수 있으나 그러한 것이 기독교의 하나님인 것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은 그의 시각이 정당성을 이미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lt;/strong&gt; 그것은 &lt;strong&gt;해석적 정당성&lt;/strong&gt;을 그 자체에서 찾지 않고 의지적으로 부여하고 싶어하는 정신을 내어준 임의적 의지의 잘못된 선택이기 때문입니다.&lt;br /&gt;&lt;br /&gt;그의 해석은 그와 같이 인식론적 존재론에서는 비로소 신을 말하지 못한다는 것으로써 또한 인식론적 존재론에서 객관적 신존재적 규정과 그에 따른 신에 대한 비판도 성립되어질 수 없다는 것과 최소한 자기를 기만하기 위한 비이성적 삶의 고통을 완화하기위한 진정제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lt;strong&gt;이처럼&lt;/strong&gt; &lt;strong&gt;인식론적인 존재론&lt;/strong&gt;, 쉽게 이야기해서 인위적으로 존재규정과 비판이라고 하는 것을 가지고 신을 이성의 한계에서 규정하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lt;strong&gt;사실적 근거없는 이야기라고 할 때에&lt;/strong&gt; 참된 신의 말씀에 의거한 그 말씀하심과 규정하심이 진정 사실로서의 실제가 되어지는 절대의 재가가 되어진 실존으로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이러한 가운데 &lt;strong&gt;우리 인간이 자존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음을 기억할 때&lt;/strong&gt;에 하나님의 자의식은 시간의 판단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의 속성적 진실함과 영원함에 신실하게 스스로 취하신 것과 같이 &lt;strong&gt;우리 성도들도 스스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에 대한 자의식적 인식의 충족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lt;/strong&gt;&lt;br /&gt;&lt;br /&gt;하나님께서는 시간을 창조하심에 있어서 시간의 연속성이라고 하는 것에 의식적 영향을 비로소 받지 않으시지만 우리 피조물은 그러한 시간이라고 하는 계기적 영향을 받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로서 알고있는 상태에서도 알아간다는 그 중심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이러한 것은 우리 성도들이 시간이 허락되어진다는 개념보다도 시간을 주장하는 가운데서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형상적 우리의 실존을 배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실존적 의미와 그 윤리적 행보라고 하는 것과 같은 모든 총체적인 것을 말입니다.&lt;br /&gt;&lt;/div&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div align="justify"&gt;&lt;br /&gt;&lt;strong&gt;결론에 즈음해서&lt;/strong&gt;&lt;br /&gt;&lt;br /&gt;성경말씀대로 살아야 할 이유는 &lt;strong&gt;하나님이 참된 하나님&lt;/strong&gt;이시라고 하는 것과 그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자들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적 영광 즉 그의 &lt;strong&gt;왕되심&lt;/strong&gt;과 그의 &lt;strong&gt;제사장적 권세&lt;/strong&gt;와 그의 &lt;strong&gt;선지적 권세&lt;/strong&gt;라고 하는 그 사역적 측면이 &lt;strong&gt;우리의 신앙의 삶의 고백되어져야 한다는 것과 자연스러운 마음과 몸의 표현이 되어진다는 것입니다.&lt;/strong&gt;&lt;br /&gt;&lt;br /&gt;그것은 임의적 생각과 사유라고 하는 것에서 비롯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lt;strong&gt;메시야적 사유&lt;/strong&gt;에서 비롯되어지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존적영감을 나타내는 성경의 자증의 영광'(&lt;strong&gt;Autopistia&lt;/strong&gt;)을 따라서 그 계시의 영광을 따라서 섭리를 나타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성경말씀대로 살아야할 이유의 총체적 기본적 이유의 실재와 실제인 것입니다. &lt;/div&gt;&lt;div align="justify"&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strong&gt;각주1&lt;/strong&gt;) &lt;strong&gt;이슬람&lt;/strong&gt;에서는 &lt;strong&gt;지나친 종교적 패러디를 행하고 있고 그것은 기만성으로&lt;/strong&gt; 나타나고 있는데 절제하는 것이 그들의 정체성에도 합당할 것으로 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lt;strong&gt;하지 말아야할 말을 함부로 하는 경향&lt;/strong&gt;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lt;strong&gt;'알라외에 다른 신이 없다'&lt;/strong&gt;(알라신 외에는 다른 신이 없도다. &lt;strong&gt;NO. god but God&lt;/strong&gt; 레자 아슬란 정규영 이론과실천)는 말을 함부로 말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 &lt;strong&gt;기독교를 모방&lt;/strong&gt;하고 있고 또한 &lt;strong&gt;기독교의 언어&lt;/strong&gt;까지도 모방하며 &lt;strong&gt;진리까지도 모방&lt;/strong&gt;하는 가운데서 악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lt;br /&gt;&lt;br /&gt;그렇게 말하는 것은 이슬람의 전통에서의 진화적 개념의 신이라고 하는 개념이 또는 &lt;strong&gt;격상된 신이&lt;/strong&gt;라는 개념이 &lt;strong&gt;진정한 고유의 신(God)를 말할 수 있는가 그것에 대하여서 말해야 할 것이다.&lt;/strong&gt; 이슬람의 진화라는 개념에서 고유하지 않던 신의 개념이 고유라고 하는 개념으로써 본래성을 비로소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을 답변해야 한다. 그것없이는 '알라는 한낫 조작되어진 신'(&lt;strong&gt;Alah, NO God but just a god made&lt;/strong&gt;)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lt;br /&gt;&lt;br /&gt;&lt;strong&gt;종교적 패러디라고 함은&lt;/strong&gt;&lt;br /&gt;&lt;br /&gt;그러나 나는 일부러 개혁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이슬람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목격되는 폭력과 유혈사태가 (이슬람과 서양의 전쟁이라기보다는) 주로 무슬림 사이의 내적 투쟁의 결과임을 강조하고, 이슬람 내부의 갈등이 모든 종교가 근대화의 도전에 직면했을 때 겪게되는 그런 종교의 갈등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기독교와 이슬람 개혁에 대한 대비가 가능하지만, 간과되어서는 안될 유사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종교 전통에 존재하는 보편적 갈등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중요한 것은 누가 신앙을 정의 내릴 권한을 가지고 있느냐, 개인인가 기관인가에 대한 갈등이다.&lt;br /&gt;(알라신 외에는 다른 신이 없도다. NO. god but God 레자 아슬란 정규영 이론과실천 p.8.)&lt;br /&gt;&lt;br /&gt;&lt;strong&gt;알라가 고유의 신이 아니라고 하는 것과 고유의 신이 된다는 개념에 대하여서&lt;/strong&gt;&lt;br /&gt;&lt;br /&gt;창조자는 ‘알라Allah’라고 불렀는데, 알라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단순히 신을 의미하는 ‘알 알라 al-ilah’가 축약된 것이다. 그리스의 제우스처럼 알라 역시 비와 하늘의 신이었으나, 이슬람 이전 시대에 최고신으로 격상되었다. 아랍신들 가운데 알라의 두드러진 위상은 평민들이 탄원하기 어려운 최고의 신으로 인식되었으므로, 오직 위기에 처했을 때나 감히 탄원할 nt 있는 존재였다. 알라의 세 딸 알라트 Allat(여신), 알 웃자 al-Uzza(전능자), 마나트 Manat (운명의 여신)과 같은 중재자에게 접근하는 것이 훨씬 편리했다.&lt;br /&gt;(알라신 외에는 다른 신이 없도다. NO. god but God 레자 아슬란 정규영 이론과실천 p. 42.)&lt;br /&gt;&lt;br /&gt;&lt;strong&gt;패러디라고 함에 있어서는&lt;/strong&gt;&lt;br /&gt;&lt;br /&gt;아랍인들이 알라를 유대인의 야훼와 동일시하는 것처럼 아브라함은 신도 아니고 우상도 아니었다. 6세기 아라비아에서 유대의 유일신교 monotheism는 우상숭배의 아랍인에게 결코 이단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아랍인의 우상숭배는 전혀 다른 종교적 이념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교적 아랍인들은 유대교가 자신들과 비슷한 종교적 개념을 단지 다르게 표현하고 있을 뿐이라고 이해했다.&lt;br /&gt;(알라신 외에는 다른 신이 없도다. NO. god but God 레자 아슬란 정규영 이론과실천 p. 46.)&lt;br /&gt;&lt;br /&gt;앞서간 많은 예언자처럼 무함마드 역시자신이 새종교를 창시했다고 주장한 적은 결코 없다. 스스로 인정한 바와 같이, 무함마드의 메시지는 이슬람 이전 아라비아에 존재하던 종교적 사상과 문화적 관습을 개혁하여 유대인과 기독교의 신을 아랍인에게 알리고자 하는 하나의 시도였다. 꾸란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lt;/div&gt;&lt;div align="justify"&gt;&lt;br /&gt;&lt;strong&gt;“신께서 노아에게 명하신 종교를 너희들의 종교로 정하셨느니라. ··· 그것은 신께서 아브라함과 모세와 예수에게 명한 것과 같은 종교이니라.(42:13)”&lt;/strong&gt;&lt;br /&gt;&lt;br /&gt;젊은 무함마드가 이슬람 이전 아라비아의 종교적 상황에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이슬람의 독특하고 신성한 기운은 다인종 다종교적 사회와 분명히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사회는 젊은 무함마드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믿음없는 아랍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혁명적 메시지를 만들게 했을 것이다. 비록 그 시대를 가리켜 ‘무지의 시대(자힐리아)’라고 부른다 할지라도.&lt;br /&gt;(알라신 외에는 다른 신이 없도다. NO. god but God 레자 아슬란 정규영 이론과실천 p. 56.)&lt;br /&gt;&lt;br /&gt;&lt;br /&gt;&lt;strong&gt;글쓰는이의 부언&lt;/strong&gt; : &lt;strong&gt;꾸란&lt;/strong&gt;에서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 그 권위라고 할 때에 그 정체성이라고 하는 것을 &lt;strong&gt;기독교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할 때&lt;/strong&gt;에 고유의 하나님을 말함에 있어서는 알라의 신격화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은 &lt;strong&gt;임의성의 합리성에서 파생된 당위성&lt;/strong&gt;이고 &lt;strong&gt;본래성의 정당함&lt;/strong&gt;과 비교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니체적인 삶을 위한 이슬람의 삶을 위한 해석과 기술일뿐 참된 자존의 하나님의 본래성과 동일시할 수는 것은 아닌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한 진화나 격상에서 본래를 비로소 말한다는 것은 &lt;strong&gt;파생적 정당함&lt;/strong&gt;이 &lt;strong&gt;본래적 정당함&lt;/strong&gt;을 &lt;strong&gt;주장할 수 있거나 정당화할 수 있다는 성립되어지지 않는 기만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lt;/strong&gt; &lt;/div&gt;&lt;br /&gt;&lt;div align="justify"&gt;본래적 정당함을 합당하게 취할 수 있는 자는 자존하시는 하나님 여호(&lt;strong&gt;Jehovah&lt;/strong&gt;)와 외에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Jehovah is God. 이라는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사 45:5). apart from me there is no God. (NIV), there is no God beside me.(KJV), Besides Me there is no God.(NASB)&lt;br /&gt;&lt;br /&gt;패러디를 하더라도 성립되어지지 않는 것을 성립되어지는 것과 같이 말한다면 그것은 기만이요 거짓의 사실로써 그리고 거짓존재로서 실존적 자리매김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lt;strong&gt;'알라는 한낫 조작되어진 신'&lt;/strong&gt;(&lt;strong&gt;Alah, NO God but just a god made&lt;/strong&gt;)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이슬람의 정직일 것입니다.&lt;br /&gt;&lt;br /&gt;&lt;strong&gt;각주2&lt;/strong&gt;) &lt;strong&gt;백승영, 니체,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 책세상 pp. 105-107.&lt;br /&gt;&lt;/strong&gt;&lt;br /&gt;"니체에게 ‘가치’에 대한 물음은 언제나 가장 중요한 철학적 질문 방식이며, 이것은 철학에 대한 반성적 물음에도 일관되게 적용된다. 이런 질문방식은 니체로 하여금 철학적 활동을 해석적-예술적 활동으로 이해하게 하며, 철학의 가치론을 삶의 실천Lebens praxis 라는 기능에서 찾게 한다.&lt;br /&gt;(중략)&lt;br /&gt;&lt;br /&gt;해석은 해석자의 힘의 상승과 삶의 고양을 추구하는 인식의지에 의해 힘의 상승과 삶의 고양을 목적으로 이루어진다. 인식의지로 자신을 표현하는 힘에의 의지가 해석작용의 규제원리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외의 다른 목적들은 부차적 목적이거나 부수적 현상일 뿐이다. 철학은 해석인 한에서 철학 또는 삶에 봉사하는, 삶의 기술이다.&lt;br /&gt;(중략)&lt;br /&gt;&lt;br /&gt;여기서 니체는 해석적 철학의 특징에 대해 ‘비자발적 망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것은 힘에의 의지라는 규제적 원리에 따른 배제이고 망각이며, 그런 한에서 철학적 해석은 가치중립적 인식일 수 없다. 철학적 해석작용의 결과는 삶이라는 목적을 위한 의미 인식일 뿐이다. 삶의 기술로서의 철학개념 ‘진리를 발견하는entdecken 기술’이라는 철학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식 정의를 재검토하게 한다. 이 정의가 불충분한 것은 그것이 진리를 삶보다 우선시하기 때문이고, 진리가 해석자의 삶과 힘에의 의지에 의해 창조schaffen되는 과정에 있는 것이라는 점을 도외시하기 때문이다." &lt;/div&gt;&lt;div align="justify"&gt;&lt;br /&gt;&lt;br /&gt;&lt;strong&gt;글쓰는이의 언급&lt;/strong&gt; : 니체의 &lt;strong&gt;생철학&lt;/strong&gt;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삶의 의지적 표현으로서 생기를 불어넣는 것과 같은 가운데서 구성적 실제규정과 그것의 정당함을 그는 세웠습니다.1881년에 &lt;strong&gt;“생성의 무죄에 대한 입증 Die Unschuld des werdens zu beweisen”(각주참고 KGW VII 1 7[7], 245쪽이하; VII 3 36[10],277쪽)&lt;/strong&gt;(백승영, 니체,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 책세상 pp. 108-109.)&lt;br /&gt;&lt;br /&gt;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은 어디까지나 합리성이라고 하는 것에서 &lt;strong&gt;파생적 타당성&lt;/strong&gt;을 말했을 뿐 진실로 그 &lt;strong&gt;자체적 정당함의 실존으로서의 실존적 정당함&lt;/strong&gt;을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lt;strong&gt;파생적 정당함과 본래적 정당함&lt;/strong&gt;은 아이소모픽(&lt;strong&gt;isomorphic&lt;/strong&gt;)한 개념 유사개념이 가능하다고 하여도 &lt;strong&gt;동일한 것은 아닌 것&lt;/strong&gt;입니다. 그리고 본래적이라고 하는 말을 철학자들이 말한다고 해도 그것은 상식적 보편적 동의가 가능하다고 임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따라 말할 뿐이지 비로소 자존적 정당함의 정당성에서 파생되어진 사실로서의 실존을 의지하여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니체역시 삶에 대한 의지적 정당함을 말하는 합리성에서 파생하는 타당성을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역시 절대의 자존의 실존과 그의 행보의 타당성을 비로소 입은 자들을 판단할 수 없는 것으로써의 사실과 실존적 자리매김되어지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lt;strong&gt;각주 3&lt;/strong&gt;) &lt;strong&gt;Autopista&lt;/strong&gt; &lt;strong&gt;성경의 자증&lt;/strong&gt; : 성경의 자증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이 어떤 닫혀진 진리관을 말하면서도 그 보편성의 자존적 정당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 되어지며 이것은 자존의 하나님의 계시라고 하는 것으로서의 그 실존적 영광의 합당한 속성적 성격이 되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닫혀있다는 개념의 편협적 인식이라고 하는 것으로서의 보편성을 상실했다는 판단을 비로소 받지 않습니다. 비록 판단 가능하다고 해도 절대보편성의 재가가 있다는 실제적 정당함은 닫혀있다는 상식적 판단의 보편성을 오히려 판단하기 때문입니다.&lt;br /&gt;&lt;br /&gt;&lt;strong&gt;자존의 하나님&lt;/strong&gt;이 그의 &lt;strong&gt;계시적 영광을 나타내실 때&lt;/strong&gt;에 그 성경은 &lt;strong&gt;자기 실존적 증거의 능력으로 나타나고&lt;/strong&gt; 그것은 현실적인 실제의 사람들의 인식의 감화와 그러한 것을 주장하는 가운데 성경이 기록되도록하는 섭리를 나타내는 것으로써의 계시였습니다. 그 계시의 기록과정의 모순형식이 가능한 것까지도 구별하여서 나타내시기를, 그러한 방법을, 자존자의 절대적 보편성의 재가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그러나 그러한 특수하고 개별적인 요소로서의 성격을 &lt;strong&gt;임의적&lt;/strong&gt;으로 축소 또는 배제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말하는 인식론적 실재론에 입각한 실제의식에 있어서 합리적 필요성과 가치성에 있어서 만들었다고 주장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물론 니체의 생의 가치철학적 입장에서는 더할나위없이 그러한 개념을 배제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기 &lt;strong&gt;멋대로&lt;/strong&gt; 필요라는 정황적 개념때문에 비로소 성경을 맞추어 꾸며내는 신화적 작업을 했다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lt;strong&gt;&lt;a href="http://sophiadei.blogspot.com/2006/05/da-vinci-code.html"&gt;다빈치코드와 그 아류와 같은 문학적 이성의 절제없음에 대한 판단&lt;/a&gt;&lt;/strong&gt;이 유명세를 꿈꾸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lt;br /&gt;&lt;br /&gt;&lt;strong&gt;중요한 것&lt;/strong&gt;은 &lt;strong&gt;성경의 자증&lt;/strong&gt;이라고 하는 것은 &lt;strong&gt;닫혀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자존적 절대 정당함과 그 절대 보편성이 부여되어진 재가되어진 가운데서의 보편성의 현실적 상대적 실존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상식적인 철학의 보편과 닫힘의 안티적 개념의 열림으로써의 보편을 말하는 것으로는 비로소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판단을 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lt;/strong&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div&gt;&lt;p align="justify"&gt;&lt;/p&gt;&lt;p align="justify"&gt;&lt;/p&gt;&lt;p align="justify"&gt;&lt;/p&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024085-116351777511690216?l=agapeia.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lated' href='http://geocities.com/vosscare' title='성경말씀대로 살아야 할 이유'/><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116351777511690216'/><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116351777511690216'/><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agapeia.blogspot.com/2006/11/blog-post.html' title='성경말씀대로 살아야 할 이유'/><author><name>.</name><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024085.post-115436316888745101</id><published>2006-08-01T01:23:00.000+09:00</published><updated>2006-08-01T04:20:32.926+09:00</updated><title type='text'>게할더스보스의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실제의식</title><content type='html'>&lt;div align="justify"&gt;&lt;a href="http://agapeia.blogspot.com/2006/08/geerhardus-vos.html"&gt;게할더스보스&lt;/a&gt;가 주장하는 &lt;a href="http://veritasdei.blogspot.com/2005_04_01_veritasdei_archive.html#111467130405938837"&gt;&lt;strong&gt;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실제의식&lt;/strong&gt;&lt;/a&gt;에 대한 설명과 그 의의해설&lt;br /&gt;&lt;br /&gt;&lt;strong&gt;&lt;/strong&gt;&lt;br /&gt;&lt;strong&gt;1. 게할더스보스, 성경신학, 이승구 기독교문서선교회 pp. 145~151&lt;/strong&gt;&lt;br /&gt;&lt;br /&gt;'구속에서 보이는 이 주권과 관련된 모세 시대의 특정한 하나님의이름은 여호와이다. 이 발음은 이 단어의 자음들에 '아도나이'(Adonai) 의 모음을 붙여서 얻어진 것이다. 이러한 모음 부가는 원래 이 가장 거룩한 이름을 도대체 발음 하는 것조차 신중하게 꺼렸던 유대인들의 습관에서 기인한다. 그 단어를 발음하는 대신 언제나 아도나이를 썼으므로 편의를 위해서 모음이 부기될 때에 아도나이에 있는 모음을 붙였던 것이다.&lt;br /&gt;&lt;br /&gt;중략&lt;br /&gt;&lt;br /&gt;그러나 다른 한 요소, 즉 신실성의 요소가 처음부터 똑같이 강조되어 있다. "너희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출 3:15),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출 6:5-6,8). 모세에 대한 자신의 주권을 보이신 출애굽기 33:19도 여호와라는 이름과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후기 성경 가운데는 특히 둘째 요소, 즉 신실성의 요소가 여호와라는 이름과 연관되어 있다(신 7:9; 사 26:4; 호 2:20; 말 3:6).&lt;br /&gt;&lt;br /&gt;&lt;strong&gt;&lt;/strong&gt;&lt;br /&gt;&lt;strong&gt;&lt;/strong&gt;&lt;br /&gt;&lt;strong&gt;해설&lt;/strong&gt;: 게할더스 보스는 본 언급에서 '&lt;strong&gt;하나님의 주권&lt;/strong&gt;'을 그 이름 '&lt;strong&gt;여호와&lt;/strong&gt;'에게서 찾을 수 있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자존의 절대자이심에 대한 것을 하나님의 이름 스스로 존재하시는 자의 주권적 정당함을 말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게 된다&lt;br /&gt;&lt;br /&gt;일반적으로 신학자들의 하나님의 이름을 말함에 있어서는 거의 그 이름의 특성에서 읽을 수 있는 정도의 유익성을 말하고 있고 그 가능성에서 비로소 말하고 있지만, G 보스는 그 &lt;strong&gt;스스로 존재하시는 자존자의 자기 절대 자존적 정당함을 스스로 취하시는 분으로서의 주권을 말함&lt;/strong&gt;으로써, '상식보편'에 따른 &lt;strong&gt;임의적 주권&lt;/strong&gt;이라고 하는 개념에서 납득되어질 수 있는 것으로서의 개념과는 달리, &lt;strong&gt;분명한 주권의식을 하나님의 이름의 실재론에서 비롯된 실제의 개념으로 말하고 있다.&lt;/strong&gt;&lt;br /&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strong&gt;2. 게할더스보스, 성경신학, 이승구 기독교문서선교회 p. 148 중.. &lt;/strong&gt;&lt;/div&gt;&lt;br /&gt;&lt;div align="justify"&gt;&lt;/div&gt;&lt;div align="justify"&gt;'..이 모든 파생 설명은 완전히 추측들일 뿐이다. 구약성경의 용법 배후에 어떤 원인인가 숨어 있다 할지라도 이스라엘 종교에서 권위적인 것은 출애굽기 3장의 계시를 통해 고정된 의미이며 우리는 이것만을 다루려고 한다. .. 이 신비의 해답은 그 문장 전체에서 찾아야 한다. '&lt;/div&gt;&lt;div align="justify"&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strong&gt;&lt;/strong&gt;&lt;/div&gt;&lt;br /&gt;&lt;br /&gt;&lt;br /&gt;&lt;div align="justify"&gt;&lt;strong&gt;해설&lt;/strong&gt;: 같은 본문 중에서 언급인데, G. 보스는 히브리 본문에 대한 해석에 대한 견해와 가능성에 대한 또는 방법에 대한 것을 언급하고 난 다음에 언급한 내용이 바로 '&lt;strong&gt;이 모든 파생 설명은 완전히 추측들일 뿐이다.&lt;/strong&gt;'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lt;strong&gt;해석 가능성이라고 하는 것&lt;/strong&gt;과 그것에 따른 여러 정황적 당위성을 학자들이 상대적으로 옹호하고 있지만, 그 해석적 당위성은 &lt;strong&gt;자존의 절대자의 계시로서 이름적 계시로써의 스스로 해석적 정당함을 취한다는 것&lt;/strong&gt;을 &lt;strong&gt;비로소&lt;/strong&gt; &lt;strong&gt;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lt;br /&gt;&lt;/div&gt;&lt;/strong&gt;&lt;br /&gt;&lt;div align="justify"&gt;이것은 가능한 해석들은 나름대로의 타당성이 있으나 용납당위성은 사람들이 비로소 임의적으로 강조하는 가운데서 발생하는 것이다&lt;/div&gt;&lt;br /&gt;&lt;div align="justify"&gt;&lt;/div&gt;&lt;div align="justify"&gt;그것과 달리 &lt;strong&gt;출 3:14절에 있는 여호와에 대한 해석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자라는 해석은, 그 해석의 용납당위성이라는 존재를 스스로 취하는 스스로의 정당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lt;/strong&gt;이다.&lt;/div&gt;&lt;div align="justify"&gt;&lt;/div&gt;&lt;br /&gt;&lt;div align="justify"&gt;이렇게 비교할 때에 다른 해석적 타당성들은 임의적으로 강조할 수 있다는 측면만 고려되어졌기 때문에 G. 보스는 억측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lt;/div&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div align="justify"&gt;&lt;/div&gt;&lt;strong&gt;3. 게할더스보스, 성경신학, 이승구 기독교문서선교회 p. 150 중&lt;/strong&gt; &lt;p&gt;&lt;/p&gt;&lt;div align="justify"&gt;'..문맥에서의 강조가 은혜스러우시겠는 약속을 시행하셔서 은혜스러우시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 있다기 보다도, 자신의 은혜로우심을 보이심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주권성에 대한 강조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입장을 취하고 보면 여호와란 이름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백성에게 행하시는 모든 일에 있어서 외부에서 어떤 영향도 받으심이 없이 스스로 결정하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lt;/div&gt;&lt;div align="justify"&gt;&lt;br /&gt;중약&lt;/div&gt;&lt;div align="justify"&gt;&lt;br /&gt;그러나 다른 한 요소, 즉 신실성의 요소가 처음부터 똑같이 강조되어 있다. “너희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출 3:15)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출6:5-6,8). 모세에 대한 자신의 주권을 보이신 출애굽기 33:19절도 여호와라는 이름과 연관되어있다(신 7:9; 사 26:4; 호 2:20; 말 3:6)'&lt;/div&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div align="justify"&gt;&lt;strong&gt;해설&lt;/strong&gt;: &lt;strong&gt;여호와에 대한 해석과 그것을 증거하는 것&lt;/strong&gt;이 &lt;strong&gt;모세의 사역의 중심&lt;/strong&gt;이었고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행하라고 하신 것이 &lt;strong&gt;예수님의 가르쳐주신 주기도임을 기억할 때&lt;/strong&gt;(&lt;strong&gt;마6:9&lt;/strong&gt;)에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심을 받도록 하는 것 그 이름을 반포하는 것(반포라는 개념이 증거라는 뜻을 가지고 있음)일 때 그러한 &lt;strong&gt;하나님의 이름이 반포되어지는 것에 나타나는 주의 주권적 자존적 의지의 뜻하심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주목하는 것&lt;/strong&gt;이 그 이름을 선포하는 것에 앞서는 &lt;strong&gt;주의 뜻을 해아리는 것&lt;/strong&gt;이 되는 것입니다.&lt;/div&gt;&lt;br /&gt;&lt;div align="justify"&gt;&lt;/div&gt;&lt;div align="justify"&gt;그것을 읽게 되는 것은 &lt;strong&gt;출애굽기 33:19&lt;/strong&gt;절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lt;strong&gt;다른 구절보다도 먼저 주목하여야 하는 당위성이 이미 부여되어진 것&lt;/strong&gt;입니다.&lt;/div&gt;&lt;div align="justify"&gt;&lt;/div&gt;&lt;div align="justify"&gt;"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출 33:19)&lt;/div&gt;&lt;div align="justify"&gt;&lt;/div&gt;&lt;br /&gt;&lt;div align="justify"&gt;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우리 앞에 반포하게 하심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은혜의 수여자로서의 &lt;strong&gt;주권적 뜻하심의 실제의식을 가진 가운데서 그 은혜의 긍휼의 사실을 받게 된다는 것&lt;/strong&gt;입니다.&lt;/div&gt;&lt;br /&gt;&lt;div align="justify"&gt;&lt;/div&gt;&lt;div align="justify"&gt;바로 여기서 주권적 뜻하심의 실제의식이라는 개념은 자존의 하나님의 자존적 절대 정당함에 따른 은혜와 긍휼 그리고 일반사실규정이라는 해석적 사실의 재가가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lt;/div&gt;&lt;br /&gt;&lt;div align="justify"&gt;&lt;/div&gt;&lt;div align="justify"&gt;이것은 자존의 절대성의 재가와 하나님의 속성으로서의 절대 보편성이 부여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상대적 무한보편의 판단을 비로소 받지 않으면서도 상대적인 진리의 사실규정과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lt;/div&gt;&lt;p align="justify"&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strong&gt;4. 게할더스 보스 구속사와 성경해석, 이길호 원광연 크리스찬다이제스트 p. 356&lt;/strong&gt;&lt;br /&gt;&lt;br /&gt;..이사야의 환상 사건 속에서 적어도 셋 번은 그는 이 사상을 충만하게 전달한다. 여호와의 임재는 성전을 충만케 하였고, 온 땅은 그의 영광을 가득찼으며, 성전에는 연기로 가득찼다. 3절의 단어들은 더욱 많은 암시를 준다. 만약 우리가 원어에 더욱 가깝게 표현한다면, “세상에 충만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 분이다.”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선지자는 여기에서 신앙적 의미에서 실제적 실현을 발견한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strong&gt;해설&lt;/strong&gt;: 게할더스 보스의 이사야 사상은 마태복음 6장에 주께서 말씀하신 주기도에 대한 내용중 하나님의 뜻하심이 하늘에서 이루신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종의 모습을 보게 한다. 이것은 구교의 입장과 같은 어떤 은혜의 주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성의 계시로써의 영광이 하나님으로부터의 재가를 받는 가운데서 실존적 정당함과 그 만물의 미학적 사실과 그 실존을 주목하게 된다는 것이다. 보스가 언급하는 '&lt;strong&gt;신앙적 의미에서 실제적 실현을 발견한다&lt;/strong&gt;'는 그 표현이 바로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얻는 것의 실제성을 이사야가 말하고 있음을 읽고 있는 것이다. &lt;/p&gt;&lt;p align="justify"&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strong&gt;5. 게할더스 보스, '구속사와 성경해석', 이길호 원광연 크리스찬다이제스트, -제8장 이사야 초기 예언의 교리상 특징들 p. 357&lt;/strong&gt;&lt;br /&gt;&lt;br /&gt;'..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통한 여호와의 자기계시에 대한 깊은 신앙적 관심의 결과로서 이사야의 개인적 삶은 매우 깊은 단계에까지 그의 공적 소명에 복종하게 되었다. &lt;strong&gt;여호와의 개념이 그의 예언을 지배하기 때문에, 그의 예언이 그의 삶을 지배한다.&lt;/strong&gt; 우리가 예레미야에서 본 것과 같이 객관적인 메시지와 그 메시지를 지니는 사람의 주관적인 감정 사이의 비극적인 갈등 때문에, 여기에서 있을 곳이 없다. 그 이유는 이사야의 예언이 덜 경고적이거나 혹독하지 아니해서가 아니라, 그의 관심이 다른 종류의 호의적 반응에 대한 여유가 거의 없이, 그의 환상 앞에서 지나가는 신적인 요소에 매우 집중하였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이사야보다 더욱 헌신의 제단에 삶을 바친 기록은 없다: 그러나 그 헌신은 모두 여호와께 바친 헌신이었다. 이사야 6장에서, “나를 보내소서”의 부르짖음은 하나님의 영광의 환상에 사로잡혀 부르짖는 외침이었다. 계시가 뒤따랐을 때에 후퇴는 없었고, 감당하여야 할 사역은 단련과 심판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떨리는 질문인, “주여 어느 때까지?”는 선지자의 애국적인 본능이 주장하는 유일한 형태이다. 그 이후에는 모든 것이 체념된 상태이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엄숙한 선포를 방해하는 어떠한 슬픈 말도 허락되지 아니한다. &lt;strong&gt;하나님 중심과 하나님께 붙잡힌 양심에서&lt;/strong&gt;, 순수한 인간적이며 한 민족적인 기준에서 판단되는 논점은 2차적인 문제이다. 이사야 6장의 정확도에 대한 심리적 비판은 주로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일반적인 선지자의 마음과 특별히 이사야의 마음은 일방적으로 예언의 윤리적 사명을 더욱 강조하는 현대 이론보다 더욱 기본적이며, 더욱 근본적으로 신앙적 힘에 의하여 지배되었다.&lt;br /&gt;&lt;br /&gt;그러나 만약 이러한 더욱 깊은 동기들의 영향을 허용하도록 강요한다면, 이러한 것들이 의로운 설교자로서 명백히 실패하는 관점에서 선지자를 지지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을 연역적으로 주장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strong&gt;해설&lt;/strong&gt;:G.vos가 이사야를 해석함에 있어서 '&lt;strong&gt;여호와의 개념이 그의 예언을 지배하기 때문에, 그의 예언이 그의 삶을 지배한다&lt;/strong&gt;'와'&lt;strong&gt;하나님 중심과 하나님께 붙잡힌 양심에서&lt;/strong&gt;'의 언급에서 주목하는 것과 같이 여호와의 개념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하는 것은 앞서 언급한 성경신학에서의 언급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이름 특히 자존의 절대자로서 자기 절대 정당함을 가지고 선택하신 상대적 표현이라고 하는 것에서 그 사실성의 진리성을 말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lt;/p&gt;&lt;p align="justify"&gt;그리고 &lt;strong&gt;하나님 중심이라고 하는 것&lt;/strong&gt;은, 임의적인 상식적인 개념에서의 동의적 차원에서의 겨우 우선적 개념으로 규정되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존의 하나님이심에 대한 그 정당함에서 상대적인 판단을 비로소 받지 않으시면서도 절대적으로 선하신 분으로서의 합당한 절대의 권위를 인정하는 그리고 순종함을 말하는 개념임을 기억하여야 함이 마땅하다.&lt;/p&gt;&lt;p align="justify"&gt;&lt;br /&gt;&lt;br /&gt;&lt;br /&gt;&lt;a href="http://www.geocities.com/voswise/vos1sem.html"&gt;&lt;strong&gt;6. 게할더스보스의 증거.. 셈의 하나님&lt;/strong&gt; &lt;/a&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strong&gt;해설&lt;/strong&gt;: 셈의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의 실재론적 측면에서 사실규정을 하는 증인들에게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으로써 오늘날 성도들의 모습이 그러하다는 것을 읽게 되는 것이며 언약을 이루심에 대한 전반적인 말씀을 하심으로 받게 되는 것으로써의 보스의 글에 대한 설명이다. &lt;/p&gt;&lt;br /&gt;&lt;br /&gt;&lt;/span&gt;&lt;a href="http://geocities.com/vosscare"&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http://geocities.com/vosscare&lt;/span&gt;&lt;/a&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lt;br /&gt;&lt;br /&gt;&lt;/span&gt;&lt;div align="justify"&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lt;/span&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lt;/span&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a href="http://reviewsites.blogspot.com/2004_03_01_reviewsites_archive.html#10788978229370892"&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글 전체 목록보기 &lt;/span&gt;&lt;/a&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lt;/span&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a href="http://www.geocities.com/voswise/about.html"&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글쓴이&lt;/span&gt;&lt;/a&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lt;strong&gt;질문을 게스트 북에 남겨주세요&lt;/strong&gt;&lt;br /&gt;&lt;/span&gt;&lt;a href="http://geocities.yahoo.com/gb/sign?member=voswise"&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Sign Guestbook&lt;/span&gt;&lt;/a&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lt;br /&gt;&lt;/span&gt;&lt;a href="http://geocities.yahoo.com/gb/view?member=voswise"&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View Guestbook&lt;/span&gt;&lt;/a&gt;&lt;span style="font-size:180%;"&gt;&lt;br /&gt;&lt;/span&gt;&lt;/div&gt;&lt;div align="center"&gt;&lt;a href="http://www.affordableauction.net/sitemap.html" target="_top"&gt;&lt;span style="font-size:180%;"&gt;&lt;img title="" style="WIDTH: 216px; HEIGHT: 29px" height="32" src="http://images.affordableauction.net/go/voswise/apple/" width="222" align="middle" border="0" /&gt;&lt;/span&gt;&lt;/a&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span style="font-size:180%;"&gt;&lt;/span&gt;&lt;/div&gt;&lt;br /&gt;&lt;br /&gt;&lt;a href="http://www.affordableauction.net/sitemap.html" target="_top"&gt;&lt;/a&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024085-115436316888745101?l=agapeia.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lated' href='http://veritasdei.blogspot.com/2005_04_01_veritasdei_archive.html#111467130405938837' title='게할더스보스의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실제의식'/><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115436316888745101'/><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115436316888745101'/><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agapeia.blogspot.com/2006/08/blog-post.html' title='게할더스보스의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실제의식'/><author><name>.</name><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024085.post-115436078284134257</id><published>2006-08-01T00:43:00.000+09:00</published><updated>2006-08-01T12:49:29.626+09:00</updated><title type='text'>게할더스보스(Geerhardus Vos)</title><content type='html'>&lt;div align="justify"&gt;'이 이름은 오늘날 과거 어느때보다도 잘 알려져 있는 것같다. 그러나 그는 워필드와 그레샴 메첸, 그리고 코넬리어스 반틸등 프린스톤 신학교의 다른 동료 교수들과 비교할 때에 여러 가지 점에서 그들보다 덜 알려진 인물이다.&lt;br /&gt;&lt;br /&gt;그러나 사실상 보스는 방대한 지식과 통찰력을 지닌 신학적 사상가였다. 아마도 프린스턴 교수들 가운데서 가장 탁월한 인물로서 심지어 그의 동료요 달밤에 함께 산책을 다닌 친구였던 워필드보다도 뛰어난 신학자 중의 신학자였다.&lt;br /&gt;&lt;br /&gt;보스는 1862년 네덜란드 프리슬란드의 헤벨렌에서 출생하여 1881년 그의 부친이 미시간주 그랜드 래피즈의 개혁교회의 청빙을 수락하자 부친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왔다. 집중적인 신학훈련을 받고 거기서 탁월한 성적을 받은 다음, 그는 암스테르담의 자유 대학교의 구약신학교수로 초빙되었다.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의 권유가 있었으나 그는 그 청을 거절하고 그 대신 그가 속한 교단의 신학교에서 봉사하다가 1893년 그 당시 프린스톤 신학교에 새로 생긴 성경 신학 담당 교수직을 수락하였다. 그는 1932년 은퇴할 때까지 거기서 봉직하였다.&lt;br /&gt;&lt;br /&gt;그는 개혁주의 성경신학의 아버지로 불리운다..' (&lt;strong&gt;각주1&lt;/strong&gt;)&lt;br /&gt;&lt;br /&gt;&lt;br /&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a href="http://operas.blogspot.com/2006/08/blog-post.html"&gt;게할더스보스의 저서소개&lt;/a&gt;&lt;br /&gt;&lt;br /&gt;&lt;a href="http://agapeia.blogspot.com/2006/08/blog-post.html"&gt;그의 실재론에 입각한 실제론&lt;/a&gt;&lt;br /&gt;&lt;br /&gt;&lt;a href="http://veritasdei.blogspot.com/2005_04_01_veritasdei_archive.html#111467130405938837"&gt;하나님의 이름에 입각한 사실규정의 정당함&lt;/a&gt;&lt;br /&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br /&gt;&lt;br /&gt;&lt;strong&gt;각주1&lt;/strong&gt;) 게할더스보스, &lt;strong&gt;하나님나라와 교회 은혜와 영광&lt;/strong&gt;, 원광연 옮김 크리스찬다이제스트 &lt;strong&gt;p103&lt;/strong&gt; 소개글 중 &lt;/div&gt;&lt;br /&gt;&lt;br /&gt;&lt;/span&gt;&lt;a href="http://geocities.com/vosscare"&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http://geocities.com/vosscare&lt;/span&gt;&lt;/a&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lt;br /&gt;&lt;br /&gt;&lt;/span&gt;&lt;div align="justify"&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lt;/span&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span style="font-family:arial;"&gt;&lt;/span&gt;&lt;/div&gt;&lt;div align="center"&gt;&lt;a href="http://www.affordableauction.net/sitemap.html" target="_top"&gt;&lt;span style="font-size:180%;"&gt;&lt;img title="" style="WIDTH: 216px; HEIGHT: 29px" height="32" src="http://images.affordableauction.net/go/voswise/apple/" width="222" align="middle" border="0" /&gt;&lt;/span&gt;&lt;/a&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span style="font-size:180%;"&gt;&lt;/span&gt;&lt;/div&gt;&lt;br /&gt;&lt;br /&gt;&lt;a href="http://www.affordableauction.net/sitemap.html" target="_top"&gt;&lt;/a&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024085-115436078284134257?l=agapeia.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lated' href='http://geocities.com/vosscare' title='게할더스보스(Geerhardus Vos)'/><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115436078284134257'/><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115436078284134257'/><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agapeia.blogspot.com/2006/08/geerhardus-vos.html' title='게할더스보스(Geerhardus Vos)'/><author><name>.</name><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024085.post-112719076090947371</id><published>2005-09-20T13:04:00.000+09:00</published><updated>2006-03-29T01:14:37.693+09:00</updated><title type='text'>이는'시간의 시작 세월의 시작을 말하기 전'이라는 개념 해석</title><content type='html'>'&lt;strong&gt;부활이 없다 하더냐&lt;/strong&gt;' 설교본문중 해설..&lt;br /&gt;&lt;br /&gt;설교 본문에서 &lt;span style="color:#ff0000;"&gt;&lt;strong&gt;시간의 시작 세월의 시작을 말하기 전이라는 표현은 시간적 표현이기 때문에 역사적 판단을 받지 못한다&lt;/strong&gt;&lt;/span&gt;는 언급을 하였습니다.&lt;br /&gt;&lt;br /&gt;즉 시간의 시작을 말하는 것은 시간의 보편성 밖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시간의 인식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시간으로 그것을 묘사해야 하는 부정적인 입장과 모순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lt;br /&gt;&lt;br /&gt;그러나 시간이 하나님의 창조물인 가운데서 그 시간, 세월의 판단을 받지 않음과 그 존재의 비교적 표현이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함에 있어서는 그 정당함이 자존의 하나님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는 자존의 하나님으로 자신의 존재적 정당함을 절대적으로 자신이 취하시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서 시간의 실존을 주관하시며 자리매김하도록 하기기 때문입니다.&lt;br /&gt;&lt;br /&gt;세월 시간의 보편성은 상대적입니다. 상대적 정당함으로 절대를 판단할 수 없는 가운데서 합리성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즉 상대적 보편의 입장에서 본다면 절대의 상대적 표현을 비로소 판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앞서 제가 모순적 표현을 한 것으로 인식되어질 수 있는 가능성으로써 '시간의 시작 세월의 시작을 말하기 전'에 대한 해석은 상대적 정당함에서 비로소 본다면 그 합리성이 부인되는 것같이 느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창조물로서의 시간의 존재와 그 역활과 그 보편성이라고 하는 것을 볼 때에는 그러한 판단은 가능하면서도 정당함이 상대적인 것뿐이며, 절대의 재가를 받지 못한 표현으로써, 그것은 하나님의 실존을 그리고 그로부터의 정당함을 입은 계시와 진리를 비로소 판단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한마디로 하나님과 시간은 상대적 판단으로 본다면 시간으로 하나님을 인식하고자 할 수 있지만 비로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재가되어진 가운데서의 역사적 하나님을 상대적이면서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strong&gt;좀더 부언하면&lt;/strong&gt;&lt;br /&gt;&lt;br /&gt;존재와 인식의 방향이라고 하는 것과 그 정당함의 시비가 합리성의 가능적 정당함이 절대의 재가를 받는 여부에 따라서 참됨과 거짓의 정체성이 성립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합리성의 실존의 정당함에 따른 합리성의 논란의 시비가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참됨과 거짓의 실존은 그것이 절대적이냐는 것입니다.&lt;br /&gt;그것이 상대적이면서도 절대적이냐 아니면 그렇게 임의적으로 받아야할 것이냐&lt;br /&gt;&lt;br /&gt;이 문제에 있어서 사람들은 후자의 경우로 생각하고 있고 또 기독교도 그 가르침의 핵심인 부활에 대한 것도 그렇게 잘못 인식하고 있습니다.&lt;br /&gt;&lt;br /&gt;그러나 전자의 경우가 옳은 것은 상대적이면서도 절대의 재가가 있게 되어지고 신의 절대의 재가와 함께 신의 절대 보편성이 부여되어지는 것이면 상대적이면서도 절대적임의 사실을 말함에 정당함이 있다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설교 본문에 있어서도 설교의 증거적 차원에서 하나님 앞에서 정당함을 입음의 정당한 합리성을 말할 수 있다는 간단한 표현만 했는데, 그것은 합리성의 실존이라고 하는 것의 정당함은 자존의 절대자로부터의 정당함을 입지 않으면 그것은 진정한 사실의 실존을 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것에서는 절대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며 상대적인 것의 반대는 절대라는 잘못된 사상의 채색에 속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lt;br /&gt;&lt;br /&gt;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인식은 그것의 정직함을 말하려면 그 말자체도 상대적이어야 하는데 즉 상대적이면서도 절대적인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서 그로부터의 정당함을 찾는 가운데서 절대의 보편의 재가가 공식화되어졌고 이것은 자존의 절대자의 예정적 예언의 역사적 사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예수님을 믿는 것이 상대적으로 비합리적인 것 같아 보여도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이라고 함의 절대적 재가가 부여되어진 가운데서 진정한 사실인 것입니다.&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024085-112719076090947371?l=agapeia.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lated' href='http://kr.blog.yahoo.com/sofj2001/1221441.html' title='이는&apos;시간의 시작 세월의 시작을 말하기 전&apos;이라는 개념 해석'/><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112719076090947371'/><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112719076090947371'/><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agapeia.blogspot.com/2005/09/blog-post.html' title='이는&apos;시간의 시작 세월의 시작을 말하기 전&apos;이라는 개념 해석'/><author><name>.</name><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024085.post-112436434025645770</id><published>2005-08-18T20:16:00.000+09:00</published><updated>2006-03-29T01:15:47.190+09:00</updated><title type='text'>질송(Etienne Gilson)은 틀렸다-(각주내용)</title><content type='html'>&lt;div align="justify"&gt;&lt;strong&gt;&lt;a href="http://veritasdei.blogspot.com/2005_12_01_veritasdei_archive.html#113575007390408594"&gt;본문 보기(click)&lt;/a&gt;&lt;/strong&gt;&lt;/div&gt;&lt;br /&gt;&lt;br /&gt;&lt;div align="justify"&gt;&lt;strong&gt;&lt;/strong&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strong&gt;&lt;/strong&gt;&lt;/div&gt;&lt;div align="justify"&gt;&lt;strong&gt;각주1&lt;/strong&gt;) &lt;strong&gt;에띠엔느 질송, '토미스트 실재론과 인식비판' 이재용옮김 서광사&lt;/strong&gt; p12&lt;br /&gt;&lt;br /&gt;&lt;strong&gt;Etienne Gilson, The Spirit of Mediaeval Philosophy, 1936&lt;/strong&gt;, p. 51&lt;br /&gt;&lt;br /&gt;"모든 하나님의 이름 이름 중에서 하나님에게 아주 적절한 이름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곧 "스스로 존재하는자"(&lt;strong&gt;qui est&lt;/strong&gt;)란 말이다. 왜냐하면 이 말은 바로 존재 자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존재 자체 외에는 다른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lt;strong&gt;Non significat forman aliquam sed ipsum esse&lt;/strong&gt;). 이 원칙에는 다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풍부함이 있다. 이제 제시된 모든 연구는 단지 그 결과들에 대한 연구일 것이다. 한 하나님이 계신데, 이 하나님은 존재(&lt;strong&gt;Being&lt;/strong&gt;)이시다 그것이 기독교 철학의 모퉁이 돌이며, 이를 놓은 이는 플라톤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라 모세인 것이다"&lt;br /&gt;&lt;br /&gt;&lt;strong&gt;Van Til, 개혁주의 신학서론 이승구역 기독교문서선교회(An Introduction To Systematic Theology)&lt;/strong&gt; p. 360&lt;br /&gt;&lt;br /&gt;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상당한 기대감을 가져다 준다. 마치 질송의 사상에서 기독교 철학과 기독교 신학을 구현해보려는 일관성이 있는 노력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음듯이 보인다. 하나님에게서는 존재와 본질이 동연적(&lt;strong&gt;coterminous&lt;/strong&gt;)이라는 진리를 참으로 본 사람은 모든 실재를 자충족적인 하나님의 전제의 빛에서 해석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질송은 그리하지 않는다.&lt;br /&gt;&lt;br /&gt;&lt;br /&gt;&lt;strong&gt;필자의 해설&lt;/strong&gt; : 반틸이 존재와 본질이 동연적(&lt;strong&gt;coterminous&lt;/strong&gt;)이라고 하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또는 시간의 흐름이라고 하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존재의 유출적 의미를 말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lt;br /&gt;&lt;br /&gt;즉 기독교 철학을 말한다면서 성경의 하나님의 존재를 임의적 존재자체로만 생각하고 철학적으로 비로소 접근할 수 있는 것으로 존재의 유출을 말하는 것은 철학적 입장으로 비로소 삼위를 말하려고 하는 것임의 잘못임을 지적하고 있다.&lt;br /&gt;&lt;br /&gt;질송이 간과하는 것은 하나님을 존재 이외에 다른 것을 말하지 않는 것으로 임의적으로 한정함이 옳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플라톤적 아리스토텔레스적 입장이 신학에 필요에 따라서 말하기 위해서 도입되었던 것을 필로(&lt;strong&gt;philo&lt;/strong&gt;)는 말하고 있는데 그 필요에 따른 차용적 입장을 위해 성경의 증거 특히 하나님의 존재를 존재로 임의적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 따라 행하고 있는 것은 주객이 전도되어진 역사인식의 문제점을 나타내고 있다고 하겠다.&lt;br /&gt;&lt;br /&gt;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러한 성경에서 인용할 수 있다는 개념만으로 그 가능성에서의 당위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기독교 철학이라고 함의 정체성을 말함에 있어서는 그 실재적 정의가 성립되지 못한다. 왜냐면 그것은 인용가능성이라는 개연적 정당함에서 사실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lt;br /&gt;&lt;br /&gt;&lt;br /&gt;&lt;strong&gt;각주2&lt;/strong&gt;) &lt;strong&gt;Van Til, 개혁주의 신학서론 이승구역 기독교문서선교회(An Introduction To Systematic Theology)&lt;/strong&gt; p 362&lt;br /&gt;&lt;br /&gt;&lt;br /&gt;&lt;strong&gt;각주3&lt;/strong&gt;) &lt;strong&gt;게할더스 보스 바울의 종말론 이승구 오광만 역, 도서출판 엠마오&lt;/strong&gt; pp. 117~119&lt;br /&gt;"심판은 죄에 의해서 도덕적 비정상성에 빠진 세계의 진전 과정의 필연적인 총괄이다. 마찬가지로 부활도 황폐와 죽음에 사로잡혔던 것을회복시키는 구실을 한다. 이 두 가지가 모두 이루어질 곳에서는 이 두 가지의 성취 자체(&lt;strong&gt;ipso facto&lt;/strong&gt;)가 이 세대에서 무엇이 잚소되었는지를 하나 하나 보이며, 그것을 배제하는 역활을 한다. 그런데 부활과 관련해서는 새로운 부가적인 요소가 고려되어야만 한다."(&lt;strong&gt;lbid p.117&lt;/strong&gt;.)&lt;br /&gt;&lt;br /&gt;"그리고 그 전체의 색조와 의미가 여호와 하나님 현현 사상으로 부터 메시아적 사유로 급격히 변화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이후에는 대개 기다리는 큰 "오심"(the great and uniformly expected "Coming"이 메시아의 오심이다. 아마도 신약의 사상 구조에서 다시 나타난 구약의 개념 중에서 이보다도 더 급격하고 중요한 변화를 겪은 것은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런 변화는 예수께서 '쿠리오스(주)'-칭호를 돌려드린 것에 의해 촉진되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예수께서 '쿠리오스'칭호의 전용(轉用)은 주 여호와(&lt;strong&gt;Jehovah-Kurios&lt;/strong&gt;)의 오심을 메시야의 강림과 거이ㅡ피할 수 없게 동일시하도록 만들었다."(&lt;strong&gt;lbid pp.118~119&lt;/strong&gt;.)&lt;br /&gt;&lt;br /&gt;&lt;strong&gt;필자의 해설&lt;/strong&gt; : &lt;strong&gt;게할더스 보스&lt;/strong&gt;는 신구약의 불연속성적인 현상적 입장에서도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에 따른 그 연속성의 사실과 그 합리성을 전개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서 구약적 용어와 그에 담겨진 사상들에 대한 메시아 안에서의 정당함의 시비를 거쳐서 사용되어지고 또 구별되어진다는 점에서 사상의 정체성을 말하고 있다.&lt;br /&gt;&lt;br /&gt;즉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율법의 모습들 중에 취한 바가 있고 버린바가 있다고 하는 말이 가능한 현상적인 표현이 있을 수 있는데 사실 그것이 아니라 완성적 의미로써 재 새롭게 하시는 가운데서의 구별적 언어와 그 담긴 사상으로 구별하였다는 것이 메시아적 사유이며 동시에 전형적 정당함을 입은 것으로 신약을 말하게 된다. 물론 메시아의 강림과 여호와 하나님의 강림과의 동일성을 말하게 되는 가운데서 그 앞선 신구약의 연속적 실재와 사실을 말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strong&gt;각주4&lt;/strong&gt;) &lt;strong&gt;알란 셀,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와 구원' 김경진 역 생명의말씀사(THE GREAT DEBATE Calvinism, Arminianism and Salvation by Alan P. F. Sell, Published in English by Baker Book House, Grand Rapids, MI., U.S.A.)&lt;/strong&gt; p. 27&lt;br /&gt;&lt;br /&gt;"신자가 이생에서 하나님을 완전하게 순종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비록 어거스틴의 지지를 빌어 그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아들 신성(神性)에 대해서는 알미니우스는 아우토데오스(&lt;strong&gt;auto Theos&lt;/strong&gt;)를 두 가지 의미로 정의하였다. (1) "참으로 하나님이신 분" 그리고 (2) "스스로 하나님이신 분." 알미니우스는 전자를 받아들이고 후자는 거부하였다."&lt;br /&gt;&lt;br /&gt;&lt;strong&gt;Etienne Gilson, The Spirit of Mediaeval Philosophy, 1936&lt;/strong&gt;, p. 51&lt;br /&gt;&lt;br /&gt;"모든 하나님의 이름 이름 중에서 하나님에게 아주 적절한 이름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곧 "스스로 존재하는자"(&lt;strong&gt;qui est&lt;/strong&gt;)란 말이다. 왜냐하면 이 말은 바로 존재 자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존재 자체 외에는 다른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lt;strong&gt;Non significat forman aliquam sed ipsum esse&lt;/strong&gt;). 이 원칙에는 다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풍부함이 있다. 이제 제시된 모든 연구는 단지 그 결과들에 대한 연구일 것이다. 한 하나님이 계신데, 이 하나님은 존재(&lt;strong&gt;Being&lt;/strong&gt;)이시다 그것이 기독교 철학의 모퉁이 돌이며, 이를 놓은 이는 플라톤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라 모세인 것이다"&lt;br /&gt;&lt;br /&gt;&lt;strong&gt;필자 해설&lt;/strong&gt; :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그 증거는 자존의 절대자의 절대 정당함을 말씀하시는 자로서 자신을 계시하시는데 알미니우스는 그러한 합리성의 정당함을 자존의 하나님으로부터 찾고 있지 않다는 것과 에뜨엔느 질송도 그러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기독교 철학의 실재를 존재론으로 보겠다는 합목적성만 생각하고 또 인용적 가능성을 위한 합리성만 취하고 있지 자존의 절대자에서 비로소 합리성의 정당함을 얻고자 하는 중심인 이미 없다.. 그리고 토미즘도 그것을 말하지 않는다 질송은 토미즘에 정통하면 할 수록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것임을 나타내는 자리에 서는 것이다.&lt;br /&gt;&lt;br /&gt;종교개혁의 실재는 '가톨릭에서 말하고 있는 중세시대의 합리성을 이해할 머리가 없는 가운데서 무질서와 혼돈을 말하는 것'(요셉 피페, '중세 스콜라신학' 이재룡, 서광사. 서문의 마지막 부분) 에서 파생되어진 것이 아니라 이런 하나님의 실재론에 대한 답변하지 못하는 중세의 가톨릭의 하나님에 대한 하나님의 실재적 증거를 위한 것으로 그 실존적 증거를 한 것이 종교개혁이다.&lt;br /&gt;&lt;br /&gt;비록 그것에 대한 인식이 흐려져서 현대신학적 개념이 다시 스콜라신학적 연속성을 말하는 미련함이 있다고 하여도 실제는 중세의 연속을 말할 수 없는 것이며 가톨릭의 사실을 말하지 못함에 대한 진정한 하나님을 말하고 증거하는 것이 종교개혁 이후의 기독교의 정체성이다.&lt;/div&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024085-112436434025645770?l=agapeia.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112436434025645770'/><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112436434025645770'/><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agapeia.blogspot.com/2005/08/etienne-gilson.html' title='질송(Etienne Gilson)은 틀렸다-(각주내용)'/><author><name>.</name><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024085.post-111465918289236398</id><published>2005-04-28T12:30:00.000+09:00</published><updated>2006-09-22T18:33:51.230+09:00</updated><title type='text'>반 기독교 선언문에 대한 간략한 해설에 즈음해서..</title><content type='html'>&lt;div align="justify"&gt;&lt;br /&gt;&lt;br /&gt;&lt;br /&gt;서론에서 밝히고 있는 것과 같이 그 글을 공동으로 작성한 분들은 모두 안티데이에서나 예수그리스도 향기카페에서 그리고 그 앞서 안사모 등지에서 대화를 나누었던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미 그러한 입장과 중심이라고 하는 것을 익히 알고 있고 또한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서 저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없었던 것을 기억합니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한마디로 정당성의 시비(是非)입니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아무리 합리성의 방향성과 그 결과적 합리성의 완성 가능성을 열어놓는다고 하여도 그 범주라고 하는 개념이 부인되어진 것이라며 즉 정당하지 못한 것이라면 그 합리성은 공허한 것이며 그것을 사실로 말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이 되어진다고 하겠습니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한마디로 타당성 조사도 하지 않고 그냥 좋다고만 말하고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은 큰 낭패를 보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함을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 때 합리적 판단 즉 타당성이 결여된 합리성이라고 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용인되어질 수 없는 것인데 임의적으로 용인된다고 생각한다면 자기 기만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오해되어질 수 있는 것은 합리성에서 타당성을 말할 수 있다는 것과 타당한 합리성을 말한다는 것은 순환적 개념으로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보편적인 기준이라고 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반기독교선언문을 작성한 분들이 말씀하신 보편적인 생각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진리라는 것을 기준으로 볼 때에 합리적 타당성이 선다고 하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보편을 설명하는 '모든'이라는 말은 아주 모호한 말이 될 수 있으며 기준적인 규범을 정의하는 것으로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초등학교 2학년 모든 사람이라는 말에도 사용할 수 있고 우리나라 청소년이라면 모두 또는 모든 이라는 진술을 할 때에 이 '모든'이라는 말은 그 보편의 범위가 임의적으로 한정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이러한 모호한 언어로 보편을 정의하고 상대적인 특수성으로써의 기독교의 실재를 분별하지 않고 특수성이라고 하는 개체적인 면을 편협함으로 인정하고 그에 따른 인식도 상대적으로 제한되어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편적 판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기독교의 특수성과 보편성에 대하여서..&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기독교는 현실적인 상대적인 입장에서 볼 때에 한 종교라는 측면으로 전체 종교들 속에 하나의 개체가 되어지고 종교적인 것을 말할 때에 기독교의 입장만을 고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현상적 판단이 가능함을 인정합니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정되어지는 개체와 특수성의 단편적 입장이라고 하여도 자존하시는 하나님 즉 스스로 존재하시는 자로서 스스로 절대의 정당함을 취하시는 절대자가 그 한정되어진 종교로서의 기독교에 보편에 재가를 인증하면 그것은 상식적으로도 절대의 보편의 재가 때문에 그 기독교의 보편성은 단지 상대적인 보편적인 것으로 판단함에 부적절한 것임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즉 특수성이 자존의 절대자의 절대 보편적 인증을 받을 때에 부여되어지는 실제적인 보편성은 현상적 특수성이라고 함의 개체적 편협이라고 함의 판단을 넘어서 본질적으로 보편적인 것임을 말씀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그렇기 때문에 상식보편이라는 개념에서 절대 보편을 판단한다는 것은 정직한 상식에서는 인정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상식보편을 기준으로 하는 종교다원주의적 보편에서 기독교의 보편성을 판단한다는 것은 바른 정신의 소유자라면 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그것이 핑계할 수 없음을 말하며 참으로 정신차린 말을 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한마디로 보편의식의 사실을 분별하지 못한 가운데서 기독교의 특수성을 생각하지 못한 분별없는 입장에서의 선언이었다고 함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lt;/div&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024085-111465918289236398?l=agapeia.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111465918289236398'/><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111465918289236398'/><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agapeia.blogspot.com/2005/04/blog-post.html' title='반 기독교 선언문에 대한 간략한 해설에 즈음해서..'/><author><name>.</name><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024085.post-110861008509769568</id><published>2005-02-17T12:11:00.000+09:00</published><updated>2006-03-29T01:18:50.946+09:00</updated><title type='text'>개혁교회는 '여호와증인'이라고 하는 이단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는가..</title><content type='html'>&lt;div align="justify"&gt;본론에 들어가기 앞서..&lt;br /&gt;&lt;br /&gt;개혁(Reform)이라고 하는 말을 어떻게 한정시키며 규정하여 말하는가 그리고 그 실제를 말할 수 있는가 그러한 측면에서 종교개혁이라고 하는 것의 판단들이 여러가지로 나타날 수 있고 그렇다는 것은 비판적 여지가 있고 개인적인 판단을 한다고 하여도 믿음의 분량이라고 하는 것 안에서 용납되어질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lt;br /&gt;&lt;br /&gt;이러한 것은 작금의 기독교의 여러 종파를 말하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것에서 구교측을 비롯한 현대주의적 개신교 내에서도 기독교의 정체성에 대한 비판과 자성이라고 하는 것을 말하는 잘못된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주목할 수도 있습니다.&lt;br /&gt;&lt;br /&gt;물론 믿음의 분량이라고 함의 차이와 그에 따른 하나님 앞에서의 선한 중심과 신앙의 고백이 있게 되어지는 것이 사실이면서도 그 믿음의 분량이라는 개념으로 규정되어질 수 없는 자리에 서는 자들도 있다는 점에서 이단에 대한 언급과 규정을 하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그러한 가운데서 이단에 대한 평가를 하게 되어지는데 그 기준은 하나님의 삼위일체에 대한 것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 그 이단이라고 함의 판단을 받아 마땅한 자들이라고 함을 말하게 됩니다.&lt;br /&gt;&lt;br /&gt;그러한 중에서도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한 특정단체가 이단임에 대한 것을 말함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삼위에 대한 부인뿐만 아니라 주의 기도를 이루는 성도들로써 가장 영향력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가장 망령되어진 이단단체라고 함을 지적할 수 있고 또한 지적되어야 함의 당위성이 너무나 분명하게 실제적으로 성립되어짐에 글을 쓰게 됩니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1. 본론에 앞서 신학사조에 대한 이해에 대하여서..&lt;br /&gt;&lt;br /&gt;&lt;br /&gt;신학이라는 특정학문과 사상의 흐름이라고 하는 것이 문학과 지성의 흐름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흐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특정 학문과 또한 신앙으로써의 그 증거적 흐름이라고 하는 것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흐름과 유럽과 기타 작은 나라들의 신학사조들도 역시 미국으로 흘러드러옴에 대한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lt;br /&gt;&lt;br /&gt;이러한 가운데서 프린스톤신학에서 개혁주의 성경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게할더스보스의 사상아래서 존머리와 코렐리우슨 반틸, 메이쳔과 같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았고, 또 우리 한국의 신학적 사상이라고 하는 것을 주장하는 그러한 보수주의 신학들의 거장들도 역시 프린스톤의 게할더스보스의 사상적 영향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적었음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수가 인정하는 것과 같이 사실화 되었던 것입니다.&lt;br /&gt;&lt;br /&gt;이러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시 자체라고 하는 보스의 사상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단지 다소 그의 합리성만 빌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 사상적 입장을 취하였고 오히려 카이퍼와 같은 자를 중심으로 하는 신학 사조로써의 '도래안티'라는 그러한 사상들과 청교도적인 입장에서의 종교개혁적인 신학을 형성하게 된 것으로 한국의 신학적 정체성을 가져온 것입니다.&lt;br /&gt;&lt;br /&gt;청교도와 개혁신학이라고 하는 것의 차이점이라고 하는 것과 그 비판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여기서 참고하는 것보다는 그 차이점으로 하나님의 이름의 실재론적 기반에서의 복음의 실재를 말한다는 것, 자존의 하나님, 자충족적인 하나님에 대한 증거라고 하는 것이 개혁신학의 기본적인 실재론이라고 하는 것을 말하는 것에서 다음의 논제로 넘어가고자 합니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2.'여호와 증인'의 거짓됨에 대하여서..&lt;br /&gt;&lt;br /&gt;&lt;br /&gt;개혁신학이라고 함을 말함에 있어서 여러가지 믿음의 분량이라고 함에 대하여서 열려있다고 하여도 여호와증인이라고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고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는 것과 같이 행동하는 기만적인 행동과 그 정체성을 비판함에 있어서는 당연하다는 것을 말할 수 있겠습니다.&lt;br /&gt;&lt;br /&gt;그렇게 말함은 우리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첫번째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구하도록 하신 것입니다.&lt;br /&gt;&lt;br /&gt;그러한 것을 기억할 때에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에 대하여서 먼저 분별하고 그 분명한 하나님의 이름의 실재적 증거가 무엇인가를 말해야 하는 당위성이라고 하는 것은 자체적 정당함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여호와의 증인이라고 하면서 삼위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심에 대한 증거의 실재를 그의 이름으로부터 실재적 정당함을 찾지 않는다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즉 예수님을 아리안주의자들과 같이 피조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상대적인 표현을 통해서도 자신의 절대 정당함에 따른 실제를 부여하시는 가운데서 예수님은 상대적 판단의 합리성의 결과를 따르지 않고 절대자 자신의 재가에 따른 하나님 자신이심을 말하여야 하는 것을 따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절대자가 상대적으로 말함과 나타내심이라고 할 때에 그 자체적 정당함은 자존하시기 때문에 상대적이라는 그러한 보편의 판단이라고 하는 것의 판단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개혁교회의 삼위일체의 정체성과 실재론이 되어지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그러나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의 실재를 의지하지 않는 가운데서 상대적인 합리적 모순의 판단을 의지하여서 삼위하나님에 대한 것을 부인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면서도 의지 하지 않는 기만이 있는 것입니다.&lt;br /&gt;&lt;br /&gt;이러한 것은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삼위하나님을 부인하면 그것은 이단이라고 하는 것을 말하게 되어지는 것은 이와 같은 견해로 비롯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이러한 단체는 자기 기만적 정체성을 가진 자들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는 자들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는 자를 죄없다 하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신 그 판단하에 그들의 실존이 있다는 것을 말해둡니다. &lt;/div&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024085-110861008509769568?l=agapeia.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lated' href='http://geocities.com/vosscare' title='개혁교회는 &apos;여호와증인&apos;이라고 하는 이단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는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110861008509769568'/><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110861008509769568'/><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agapeia.blogspot.com/2005/02/blog-post_17.html' title='개혁교회는 &apos;여호와증인&apos;이라고 하는 이단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는가..'/><author><name>.</name><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024085.post-110386041891720962</id><published>2004-12-24T13:50:00.002+09:00</published><updated>2009-11-24T01:06:14.802+09:00</updated><title type='text'>토론을 위한 링크</title><content type='html'>&lt;div align="center"&gt;토론을 위해 준비한 카페및 블로그와 클럽입니다.&lt;/div&gt;&lt;div align="center"&gt;좋은 대화를 나누었으면 합니다.&lt;/div&gt;&lt;div align="center"&gt;감사합니다.&lt;/div&gt;&lt;br /&gt;&lt;div align="center"&gt; 네이버 카페 &lt;/div&gt;&lt;div align="center"&gt;&lt;a href="http://cafe.naver.com/gloriadei"&gt;http://cafe.naver.com/gloriadei&lt;/a&gt;&lt;br /&gt;&lt;br /&gt;야후그룹&lt;br /&gt;&lt;a href="http://groups.yahoo.com/group/gloriadei/"&gt;http://groups.yahoo.com/group/gloriadei/&lt;/a&gt;&lt;br /&gt;&lt;br /&gt;파란클럽&lt;br /&gt;&lt;a href="http://club.paran.com/gloriadei"&gt;http://club.paran.com/gloriadei&lt;/a&gt; &lt;/div&gt;&lt;div align="center"&gt; &lt;/div&gt;&lt;div align="center"&gt;다음카페 &lt;/div&gt;&lt;div align="center"&gt;&lt;a href="http://cafe.daum.net/gloriadei"&gt;http://cafe.daum.net/gloriadei&lt;/a&gt;&lt;/div&gt;&lt;br /&gt;&lt;br /&gt;&lt;br /&gt;&lt;div align="center"&gt;&lt;/div&gt;&lt;div align="center"&gt;&lt;/div&gt;&lt;div align="center"&gt;&lt;/div&gt;&lt;div align="center"&gt;&lt;strong&gt;이외에 가입없이 토론을 원하신다면&lt;/strong&gt; &lt;/div&gt;&lt;div align="center"&gt;아래 블로그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lt;/div&gt;&lt;br /&gt;&lt;div align="center"&gt;&l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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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110386041891720962'/><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110386041891720962'/><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agapeia.blogspot.com/2004/12/blog-post.html' title='토론을 위한 링크'/><author><name>.</name><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024085.post-110110518560224332</id><published>2004-11-22T15:27:00.001+09:00</published><updated>2009-05-27T11:44:11.635+09:00</updated><title type='text'>안티 기독교적 입장들과의 대화 및 글목록</title><content type='html'>저의 작은 이글들은(&lt;a href="http://toagainstism.blogspot.com/"&gt;answers to antichristisms&lt;/a&gt;)안티 기독교적인 입장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 내용들을 정리했습니다. 여러곳에서 언급되어지는 대화를 한 곳에서 보실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의문이나 말씀하실 것이 있으시면 저의 소개(&lt;a href="http://veritasdeiso.blogspot.com/search?updated-max=2009-05-23T14%3A27%3A00-07%3A00&amp;amp;max-results=1"&gt;about me&lt;/a&gt;)에서 보실 수 있는 메일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 안에서 좋은 교제가 있었으면 합니다.&lt;br /&gt;&lt;br /&gt;&lt;br /&gt;4/28/2005 Edit 반기독교 선언에 대한 답변&lt;br /&gt;3/14/2005 Edit 플라토닉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것을 보며..&lt;br /&gt;3/14/2005 Edit " 개신교, 다른 종교 포용 해야 산다. "-논의토론&lt;br /&gt;2/14/2005 Edit 아담 이전에도 인간은 존재했나? 네피림의 존재...&lt;br /&gt;2/3/2005 Edit 로마신화와 기독교에 대한 유사성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lt;br /&gt;2/3/2005 Edit 반기련에서 일송정님과 나눈 대화록..&lt;br /&gt;12/6/2004 Edit 샨티님과 보편에 대한 대화... 철학과 신학의 보편논쟁&lt;br /&gt;11/30/2004 Edit 신비인님과 대화4&lt;br /&gt;11/25/2004 Edit 신비인님과 대화3&lt;br /&gt;11/25/2004 Edit 신비인님과 대화2&lt;br /&gt;11/25/2004 Edit 신비인님과 대화1&lt;br /&gt;11/25/2004 Edit 유령의집님의 글(저와 대화한 내용 자신이 올린 글)에 대한 답변&lt;br /&gt;11/22/2004 Edit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lt;br /&gt;11/22/2004 Edit 당위성에 대한 비웃음에 대하여서..&lt;br /&gt;11/22/2004 Edit 안티들의 환영사라^^&lt;br /&gt;11/22/2004 Edit 제가 실명을 언급한 이유에 대하여..&lt;br /&gt;11/22/2004 Edit 글들을 올리시는 것은 이미 당위성을 잃는..&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024085-110110518560224332?l=agapeia.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lated' href='http://geocities.com/vosscare' title='안티 기독교적 입장들과의 대화 및 글목록'/><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110110518560224332'/><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110110518560224332'/><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agapeia.blogspot.com/2004/11/blog-post_22.html' title='안티 기독교적 입장들과의 대화 및 글목록'/><author><name>.</name><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024085.post-109954733561033108</id><published>2004-11-04T14:44:00.000+09:00</published><updated>2006-03-29T01:25:14.816+09:00</updated><title type='text'>상담목록</title><content type='html'>&lt;blockquote&gt;저의 작은 글들(&lt;a href="http://antworten.blogspot.com/"&gt;answers&lt;/a&gt;)의 목록입니다.&lt;br /&gt;기록된 달과 날짜를 '아카이브'(Archives)를 클릭하심으로 찾아보시기 편하게 하였습니다.&lt;br /&gt;자주는 아니지만 각주를 준비하고해서 되도록이면 객관성이 있게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lt;br /&gt;의문이나 말씀하실 것이 있으시면 저의 소개(&lt;a href="http://www.geocities.com/voswise/about.html"&gt;about me&lt;/a&gt;)에서 보실 수 있는 메일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 안에서 좋은 교제가 있었으면 합니다.&lt;/blockquote&gt;&lt;br /&gt;&lt;br /&gt;&lt;blockquote&gt;5/12/2005 Edit 기독교를 안믿음 정말 지옥갈까요?&lt;br /&gt;5/12/2005 Edit Re: 주일 성수란 성경 적인가요?&lt;br /&gt;1/20/2005 Edit 왜 오늘날 우리는 안식일(토요일)이 아닌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까?&lt;br /&gt;1/20/2005 Edit 진화론이 논리적인가요.. 아닙니다.!!&lt;br /&gt;1/20/2005 Edit 할머니의 죽음으로부터.. 그리고 연옥에 대한 소망에 대하여서..&lt;br /&gt;12/9/2004 Edit 채워지지 않는 믿음..&lt;br /&gt;11/15/2004 Edit 하나님의 사랑하심은 우리의 판단에 국한되어지지 않아요..&lt;br /&gt;11/15/2004 Edit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요??&lt;br /&gt;11/15/2004 Edit 하나님은 왜 저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을까요??&lt;br /&gt;11/15/2004 Edit 신앙의 확신과 회의에 대하여서..&lt;br /&gt;11/13/2004 Edit 이방인 같은 느낌에 대하여..&lt;br /&gt;11/13/2004 Edit 자살 충동에 대하여서..&lt;br /&gt;11/13/2004 Edit 낙태의 윤리적 문제 극복과 영혼의 향방..&lt;br /&gt;11/13/2004 Edit 강요되어진 '분명한 입장'에 대하여서...&lt;br /&gt;11/12/2004 Edit 혼전 성관계에 대하여 .. 그러면서도 한가지..&lt;br /&gt;11/12/2004 Edit 신앙무엇이든 물어보세요..&lt;/blockquote&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024085-109954733561033108?l=agapeia.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109954733561033108'/><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109954733561033108'/><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agapeia.blogspot.com/2004/11/blog-post.html' title='상담목록'/><author><name>.</name><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024085.post-109305954031684159</id><published>2004-08-21T12:34:00.000+09:00</published><updated>2006-03-29T01:25:47.883+09:00</updated><title type='text'>2달만에 인사..</title><content type='html'>2달만에 글을 쓰네요.. 잠시 사정상 접속하지 못하고 publishing이 안되어서&lt;br /&gt;여기서는 회원님들과 좋은 만나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중심에서 만들었습니다.&lt;br /&gt;자주 여기에 글을 올리도록 힘쓰겠습니다.&lt;br /&gt;&lt;br /&gt;모두 건강하시기를 바라면서..&lt;br /&gt;지난 여름은 참 잔인하게 더웠습니다.&lt;br /&gt;그만한 대가를 치루고 이제 가을을 맞이하는데..&lt;br /&gt;좋은 결실의 가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024085-109305954031684159?l=agapeia.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109305954031684159'/><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109305954031684159'/><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agapeia.blogspot.com/2004/08/2.html' title='2달만에 인사..'/><author><name>.</name><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024085.post-108486122757876216</id><published>2004-05-18T15:12:00.000+09:00</published><updated>2006-03-29T01:26:18.553+09:00</updated><title type='text'>작은 만남들이 빛나는 기쁨을 바라보며..</title><content type='html'>블로그에서 만남과 교제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준비했습니다. 보편교회의 지역적인 교인들로서의 지역적인 성도들의 교제가 옳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인터넷이 그것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전자의 경우를 위한 것으로써는 그 유익과 실제를 말할 수 있다고 봅니다.&lt;br /&gt;&lt;br /&gt;좋은 만남과 교제가 있기를 바랍니다.&lt;br /&gt;&lt;br /&gt;여기는 가입하지 않고 답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글은 가입하셔야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이메일로 보내주시면 상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lt;br /&gt;&lt;br /&gt;&lt;br /&gt;당분간은 저의 기본적인 에세이집이 될 것같군요.. 꼭 가입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또 답글 comment를 클릭해서 쓰실 수 있으니 부담없이 오셔서 글도 많이 남겨주세요.. 구체적인 글씀을 위해서는 회원 가입해주셔서 좋은 만남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lt;br /&gt;&lt;br /&gt;&lt;br /&gt;저의 공식 블로그는 여깁니다.&lt;br /&gt;&lt;a href="http://sophiadei.blogspot.com"&gt;여기클릭하세요***&lt;/a&gt;&lt;br /&gt;&lt;br /&gt;&lt;p&gt;&lt;/p&gt;&lt;p align="center"&gt;&lt;a href="http://www.affordableauction.net/sitemap.html" target="_top"&gt;&lt;img title="" style="WIDTH: 216px; HEIGHT: 29px" height="32" src="http://images.affordableauction.net/go/voswise/apple/" width="222" align="middle" border="0" /&gt;&lt;/a&gt;&lt;/p&gt;&lt;br /&gt;&lt;a href="http://www.affordableauction.net/sitemap.html" target="_top"&gt;&lt;/a&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024085-108486122757876216?l=agapeia.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108486122757876216'/><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024085/posts/default/108486122757876216'/><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agapeia.blogspot.com/2004/05/blog-post_18.html' title='작은 만남들이 빛나는 기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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